[유럽]/[아이슬란드]

[D+223/2014.7.28/셀포스, 랜드만날라우가루/아이슬란드] 생동감 넘치는 오프로드 체험

빈둥멀뚱 2014. 7. 29. 06:42

 

푹 자고 일어나니 다들 피곤했는지 아직 자고 있었다. 텐트안과 텐트를 정리하고나니 하나 둘 씩 밝은 얼굴로 일어나길래, 같이 아침을 준비했다. 아침은 어제 밤에 남았던 밥을 이용한 숭늉과 셀포스(sellfoss)마트에서 산 10개 들이 과일, 스크램블 에그, 식빵이었다. 이번에도 준비하다 보니 제법 푸짐해져서 엄청 배를 채웠다.

다시 한번 어렵게 차에 짐을 싣고는 늦은 김에 마트에 다시 들려 오늘 저녁에 먹을 쌀과 양상추를 사고 차에 기름을 가득 채운 후(1L=328.3), 오늘의 목적지인 랜드만날라우가르(landmannalaugar)를 향해 출발했다. 우리 모두 처음으로 오프로드를 들어선다는 설렘에 들떠 있었다. 날은 좀 흐리고 비도 오다 말다 했지만, 오프로드에 들어갈 때면 날씨도 좀 궂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전혀 개의치 않았다.

 

 

1번 링로드에서 26번을 따라 가다가 landmannaleid도로로 들어서면서 오프 로드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많은 차량들이 지나다녀서 그런지 비교적 평탄한 길이었다가 조금씩 거친 도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 풍경 역시도 점점 더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한 무리의 말을 우리로 몰아가는 현지인들이 보이길래 잠시 차를 세우고 구경했더니 주변 풍경이 워낙 멋있어서 아무 곳에나 차를 세워도 CF를 찍는 것 같은 그림이 나왔다.

 

 

 

 

더 깊숙이 들어갈 수록 푸르른 이끼를 가득 머금은 기괴스러운 형태의 검은 바위들, 멀리 보이는 나무 한 그루 없는 산, 빨간 색으로 보이는 일부 언덕들, 드문드문 보이는 생명력 강한 들꽃들, 이런 것들이 반복적으로 펼쳐지며 감탄을 자아냈다. 어느 순간 언덕을 넘어가면 작은 폭포를 동반한 엄청난 물줄기의 강이 보이는가 하면 열심히 달리다 다음 코너를 돌고 나면 하늘빛을 가득 머금은 호수가 나타나기도 하고 윈도우 배경화면과 같은 푸르른 이끼의 언덕이 저 멀리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중간 중간 차를 멈춰가며 바람을 몸으로 맞고 부드러운 이끼를 발로 밟으며 주변을 좀 걸어보고 같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하지만 차를 세울 때마다 매번 전혀 다른 풍경이 눈 앞에 놓이는것에 깜짝 놀랐고, 우리가 타고 온 차를 돌아 볼 때마다 어디에 세워 놓건 차를 팔기 위한 팜플렛들에서 본 것 같은 모습이 펼쳐졌다.

 

 

 

 

이윽고 본격적인 오프로드가 시작된 이후 첫 번째 작은 천이 나타났고 첫 번째 도강에 도전했다. 이미 반쯤 건너서 모래 언덕에 서있는 차도 있었고 우리가 도착하자 마자 반대쪽에 도착한 차도 있었다. 우리 모두는 약속이나 한 듯 차에서 내려 물의 깊이와 건너기 용이한 곳을 찾으려 위 아래를 걸어 다녔다. 그리고는 적당한 곳을 찾아 처음으로 물길을 무사히 건너는 데 성공했다. 우리 모두는 엄청 신나 하면서 환호성을 지르고는 또 다시 내륙 깊숙한 곳을 향해 달려갔다.

 

 

달리다 보니 이곳을 혼자 자전거로 달리고 있는 사람도 있어 엄청 신기해 하면서 손을 흔들어 응원해 주었다.

다시 오프로드를 달리다 출출해져서 일단 landmannahellir 캠핑장으로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들어가는 길에 얕은 물길이 보이길래, 확인할 것 없이 그냥 넘어갔더니 중간에 잠깐 깊어지는 곳이 있어 본넷 위로 물이 엄청나게 올라왔다. 당황하지 않고 꾸준히 가속을 해서 반대쪽에 도착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출렁이는 물이 창을 통해 안쪽으로 들어왔다. 난데 없는 물벼락에 당황해 잠시 서서는 물을 닦아내고 한바탕 다 같이 웃으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이번의 경험을 통해 두 가지를 배웠다. 모든 물길은 얕아 보여도 반드시 확인하고 가야 한다는 것과 물길을 지날 때는 반드시 창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

 

 

도착한 캠핑장에 물어보니 오래된 주택 안에서 바람을 피해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정통 가옥 느낌의 집 안 테이블에 둘러 앉아 스파게티를 해 정말 맛있게 먹었다. 내부가 조금은 어두웠지만 분위기가 있었고 무엇보다 밖에 엄청나게 부는 바람을 피해 점심을 먹기에는 더 없이  완벽한 장소였다.

 

맥주 한 잔씩 하면서 배부른 점심을 먹고 기운을 차려서는 다시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술을 안 먹는 자춘이가 성실하게 운전을 잘 해줘서 그 다음부터는 물을 건널 때 큰 위기는 없었다.

 

 

중간에 잠깐 서서 풍경 구경도 하고 절벽 사이로 흐르는 계곡도 보고

 

또 다시 들썩이며 오프로드를 달리고 있는데 언덕을 돌아서자 눈 앞에 엄청난 호수가 펼쳐졌다. 차 한 두 대가 정차해 있길래 우리도 위쪽에 차를 세우고 언덕 위를 올라 갔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이 쪽에 나 있는 길은 랜드마날라우가르를 트래킹하는 코스 중 일부분이었다.

 

 

실제 길을 따라 반대쪽에서 배낭을 매고 걸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려다 보이는 호수의 풍경과 주변을 둘러 싼 화산분화구와 이끼들의 조화는 정말 비현실적으로 신비로웠다. 티비에서 열심히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다가 신비한 힘에 의해 갑자기 티비 속으로 이동해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너무나 이색적인 풍경에 현실감마저도 극히 희미해져 있었다.

한참을 내려다 보면서 구경하다 굵어지기 시작한 비바람에 다시 차로 돌아왔는데, 어느새 아까 그 자전거 아저씨가 우리 차 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는 포르투칼 출신 선생님으로 이름은 리카르도(Ricardo)였는데 우리처럼 10여일 일정으로 아이슬란드에 왔다고 했다. 나를 보고 아는 척을 하길래, 들어보니 레이카비크 시티 캠핑장에 있을 때 우리 옆자리에 앉아 나에게 펜을 빌려갔던 사람이었다. 열심히 지도를 보며 펜으로 뭔가를 그리고 있길래, 그런가 보다 했더니 자전거 루트를 확인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반가운 마음에 유진이는 그에게 맥주를 권했지만 그는 자전거를 타다 넘어질 거라며 웃으며 거절했다. 그의 목적지도 우리와 같은 랜드마날라우가르 캠핌장이길래, 이따가 다시 만나자고 했더니 먼저 출발하면서 자신의 뒤를 따라오라고 짐짓 여유를 보였다.

 

 

 

한 동안 말을 탄 듯 꿀렁거리며 캠핑장 입구에 있는 제법 넓은 물길마저 건너 마침내 도착한 랜드마날라우가르 캠핑장 한 켠에서 수증기가 올라오고 있길래,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이 곳에 공짜 온천이 있다고 했다. 놀랍고도 반가운 마음에 바로 텐트를 설치하고 온천을 향해 출발했다. 처음으로 고프로를 사용하려고 했지만 SD card를 인식하지 못해서 다음으로 미뤄야만 했다. 멀리서 볼 때는 올라 오는 수증기만 보고 온천탕이 풀장처럼 하나 있는 것 인줄 알고 가봤더니 흐르는 온천물을 따라 작은 물길이 있었고 그 물길이 모두가 온천물로 따뜻했다.

 

 

 

 

사람들은 물길을 따라 여기 저기를 떠다니며 온천물을 즐기고 있었다. 처음에 들어가 보니 그냥 따뜻하길래, 우리나라 같은 곳은 아니구나 하며 잠시 실망했지만 막상 물이 흘러 내려오는 근원지 쪽으로 이동해 가니 물이 상당히 뜨거웠다. 주변의 풍경을 둘러 보며 맥주 한 캔을 따 마시고 즐기는 온천은 정말 낙원 그 자체였다.

 

한 동안 나가기가 싫어서 물이 너무 뜨거우면 멀리, 몸이 좀 식으면 가까이, 이런 식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온천욕을 즐기다가 어렵게 자리에서 일어나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저녁 메뉴는 밥과 따끈한 라면 그리고 자춘이와 승혁이가 한국에서 가져온 깻잎, 장조림 등의 밑반찬이었다. 점심도 훌륭했지만, 온천욕 이후에 먹는 밥과 라면의 조화는 정말 끝장이었다.

 

장조림 국물 하나 남기지 않고 밥에 비벼가며 맛있게 먹고 나니 한국에서 왔다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 자리에 같이 합류했다. 27, 25, 24살의 대학생들로 준규, 순구 그리고 이름을 잊은 2명의 밝고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이었다. 이들은 버스로 이곳에 와서 2박3일 트래킹을 한 후 다시 렌트를 해서 아이슬란드를 돌 것이라고 했는데, 배낭을 지고 갈 생각이다 보니 식량이 상당히 적었다. 간식과 저녁을 모두 라면으로 먹고 있길래 우리 쌀과 계란을 좀 줘서 라면 먹을 때 같이 먹도록 했다. 그리고는 맥주랑 보드카도 같이 나누어 마셨는데 워낙 명랑한 친구들이다 보니 잘 어울려서 9명이 으쌰으쌰하면서 정말 즐거운 술자리를 가졌다. 뜻밖에 만난 인연으로 모두가 유쾌하고 시끌벅쩍 즐거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