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튀니지]

[D+250/2014.8.24/시디부사이드/튀니지] 면도와 이발 사이, 부유하고 아름다운 마을, 시디부사이드(Sidi Bou Saide)

빈둥멀뚱 2014. 8. 25. 05:46

역시나 밤새 더위에 시달렸다. 여러 번 깨면서 샤워를 했고 잠시 시원해지면 다시 잠들었지만 더위에 또 다시 깨다 보니 잠을 설쳤다. 그러다 보니 잠결에 긴 머리와 수염이 더위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밤새 긴 머리에 대해 짜증이 나서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면도를 하고 이발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는 네팔에서 완전히 면도한 이후로 한번도 완전히 밀지 않았던 수염을 시원하게 밀어 버렸다. 좀 어색하고 얼굴도 커진 느낌이긴 했지만 입 주변이 시원했고 부드러웠다. 머리도 시디 부 사이드를 다녀와서는 자르기로 하고 삶은 계란과 토마토, 포도, 빵으로 아침을 먹고는 남은 것들을 챙겨 튀니스 마린(Tunis marine)역으로 갔다.

 

표를 구입하고(거리에 상관 없이 1인당 0.68, 2인 1.36디나르) 역사로 들어갔는데 한창 공사 중이어서 마치 폐공장 안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참을 기다리자 전철이 엄청나게 느린 속도로 역사로 들어왔고 사람들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무질서하게 전철에 뛰어 올랐다.

 

 

전철이 출발하자 사람들은 익숙한 듯 억지로 문을 열어 바람을 맞으며 문에 매달려 갔다. 조금 위험해 보였지만 어린 아이들은 신난 듯 전철 문에 매달려서 곡예를 하기도 했다. 전철은 한 동안 호수를 가로 질러 달려 갔고 그 이후로는 상당히 많은 역에 정차했다.

 

우리는 시디 부 사이드 역에 내리려고 했지만 2 정거장 전인 카르타지 프레지던스(carthage presidence)역에서 모두 하차해서 버스를 타야만 했다.

 

인터넷에서 공사 중이어서 무료 셔틀을 태워준다고 본 것 같은데 맞는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역으로는 두 정거장 이었지만 거리는 2km도 안되 보여서 사람이 가득 찬 버스를 포기하고 걷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이것이 더욱 좋았다.

 

 

시디 부 사이드의 거리와 해변을 통 털어 이 길이 가장 편안하고 아름다운 길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굉장히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규모가 있는 집들 사이로 난 길이었는데 한 눈에도 부유한 동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하얀 색과 파란색이 조화된 집과 문이 보였고 그 외에도 각가지 색의 꽃과 악세사리로 꾸며진 집들은 정말 멋지고 훌륭했다.

 

나는 길을 따라 걷다가 항구가 있다는 표지판을 보고 해변 쪽으로 걸어 내려 갔는데 많은 현지인 관광객들이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지중해의 물 색깔은 정말 멋진 파란색이었고 날씨는 한 없이 좋았다. 햇빛을 피할 곳이 많지 않아 피부가 탈 것이 걱정됐지만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많이 덥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열심히 수영 중인 모래 사장을 지나 배 들이 정박한 곳을 보니 어선이 아닌 요트를 위한 정박장이었다. 이 곳에서는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등 각 나라의 국기를 단 많은 호화 요트들이 보였다. 요트를 소유하는 것이 미래의 꿈꾸는 일 중 하나였기에 정박장을 구석 구석 다니며 요트를 구경했는데 엄청난 규모의 것부터 작은 미니 요트까지 종류도 상당히 다양했다. 튀니지 국기를 달고 있는 배들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다른 나라의 국기를 달고 정박해 있는 배를 보면 멀리서부터 항해를 해서 이곳까지 온 것 같아 정말 부럽기도 하고 요트를 갖고 여행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먼 미래의 또 다른 미지의 여행에 대해 상상하면서 수 많은 요트를 구경하다가 뒤쪽의 마을로 통하는 365 계단을 통해 마을로 올라왔다.

 

메디나만큼 좁은 골목길은 아니었지만 아기자기한 길을 따라 흰색과 파란색으로 멋지게 그리고 상당히 아름답게 형성된 마을을 구경하는 일은 정말 즐거웠다. 모로코의 쉐프샤우엔(Chefchaouen)이 파란색을 주로 띈 소박한 시골마을이었다면 시디 부 사이드는 좀 더 화려한 색감을 가진 아름다운 관광지 같은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쉐프 샤우엔 같은 분위기가 더 좋지만, 색감이나 아름다움만을 봤을 때는 이 곳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동네를 한 바퀴 둘러 보고는 중심가로 내려와 동네 찻집에 아저씨들 사이에 앉아 커피와 차를 한잔씩 마셨다(1.2디나르). 역시 모로코와 비슷한 느낌의 민트 티이지만 튀니지의 차가 덜 달고 더 맛있었다. 한 동안 앉아 주변 사람들과 관광객, 현지인들을 구경하며 한적한 시간을 보냈고 점심으로 싸간 계란, 빵, 토마토, 포도를 먹었다.

 

그리고는 슬슬 걸어서 다시 전철을 타고 튀니지 마린 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호텔로 걸어오는 길에서 발견한 이발소에서 머리를 잘랐다(10디나르). 가격은 물가에 비해 조금 비싼 편이었지만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르는 것을 보며 꽤나 인기 있는 집인 것 같았다. 더위에 대비해서 처음 한국을 떠날 때처럼 머리를 완전히 짧게 잘랐고 자른 후 제법 만족스러웠다. 머리를 자르고 면도한 내 모습을 보니 처음 한국을 떠날 때 얼굴이 다시 나오는 것 같아 신기하기도 했고 살이 전혀 빠지지 않은 것 같아 조금 쑥스럽기도 했다.

 

머리를 자르는 동안 한 아저씨가 머리를 자르러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튀니지에 있는 태권도 관장님이었다. 태권도 5단이라고 하시며 옷도 국기원 옷을 입고 있었는데 한국에 다녀 온 적이 있으시다면서 한국어로 몇 마디 인사를 건내었는데 신기하고 반가웠다.

마지막까지도 웃으며 인사하시는 사장님

수원에 가 본적이 있다고 하시고 태권도 옷을 입고 다니며 열심히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한국과 태권도를 정말 사랑하는 분 같았다. 반가운 마음에 같이 사진도 찍고 악수를 하고는 헤어졌다.

 

기차역에 들려 내일 갈 수스(Sousse)행 표를 사고(1인 8디나르) 저녁으로 어제 먹은 부대찌개 맛의 오짜를 다시 한번 먹으려고 기대했는데 일요일이라 그런지 문이 닫혀 있는 바람에 치킨과 얼음을 사서 시디 부 사이드에서 사온 맥주와 함께 치맥을 했다.

이 곳에서는 맥주를 팔아도 냉장고에 넣지 않고 팔아 간신히 미지근하지 않은 정도의 맥주만 먹었는데 간만에 얼음을 넣어서 시원하게 먹으니 너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