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튀니지]

[D+252/2014.8.26/모나스티르/튀니지] 헛탕이 많은 하루

빈둥멀뚱 2014. 8. 27. 03:34

정말 간만에 편안한 밤을 보냈다. 덥지도 않았고 모기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밤새 한 번 깨지 않고 아침에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도 기뻤다. 상쾌하고 가벼운 몸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을 먹으며 와이파이를 좀 썼다.

 

9시부터 관람이 가능한 메디나 내의 그레이트 모스크(great mosque)를 보러 갔는데, 들어가고 보니 입장료가 있었다(1인 5디나르). 입구에서 표를 주는 사람이 옷도 빌려 주며 여자의 경우는 온 몸을 가리고 추가적인 천으로 머리까지 가리게 했고 남자는 어깨만 가려져 있으면 큰 문제 없이 들어 갈 수 있었다.

 

 

수스의 그레이트 모스크는 바다 바로 옆에 세워져 있는데 역시 군사 기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한다. 지금은 바다를 좀 메워서 배가 들어 올 수 있는 항구로 쓰고 있기 때문에 좀 걸어 나가야 바다가 보이는데 예전에는 물이 바로 모스크 앞까지 들어왔던 것 같다. 2층에서 주변을 둘러 보고자 굳이 입장료를 내면서까지 들어갔는데 2층을 통하는 계단은 막혀 있었다. 이때부터 시작해서 오늘 하루 종일 유적지 관람 운은 나를 따라주지 않았다.

 

 

그리고는 전철을 타러 항구 남쪽에 바로 붙어 있는 밥 제디드(Bab Jedid)역으로 갔다. 거의 한 시간 정도 마다 한 대씩 전철이 다니는 듯 했고 1디람에 표를 산 후 잠시 앉아 기다리다가 전철에 올랐다. 시원하게 에어컨이 나오고 자리도 충분했기 때문에 정말 편안하게 모나스티르(Monastir)에 도착했다.

 

모나스티르는 바닷가에 있는 하르타마 리밧(ribat, 성채 혹은 요새)의 사진을 보고 설명을 읽으니 한번쯤 꼭 가고 싶은 곳이라 찾게 된 마을이다. 8세기 말에 처음 지어진 후 방어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여러 번 증축되고 보수된 하르타마 리밧은 하필 직접 방문한 오늘도 보수 공사 중이었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여기 저기로 그늘을 찾아 옮겨 다니며 겨우 도착했는데, 10월에나 다시 개장한다는 안내 문구와 함께 내외벽을 열심히 보수 하고 있었다. 슬쩍이라도  보고 싶었지만 입구에서 사람들이 단단히 길을 막고 있어 관람은 절대 불가였다.

 

 

하지만 리밧으로 가는 길에 제법 멋진 건물인 보우기바 모스크(Bourguiba mosque)를 구경했고 리밧 성벽의 그늘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해변에서 열심히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옛 항구에는 많은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었고 옆에 마리나에는 제법 많은 수의 요트들이 정박해 있었다. 평일 낮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수영을 하며 더위를 날리고 있었는데 딸 아이를 2명 데리고 해변에 나온 아저씨의 여유 있는 삶이 아주 좋아 보였다. 차를 갖고 가벼운 복장으로 튜브만 챙겨서 온 것을 보면 관광객이라기 보다 현지 주민 같은데 평일 낮에 어린 딸들과 놀아 줄 수 있는 여유가 너무나도 좋아 보였다.

튀니지는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삶의 수준 면에서는 모로코 보다 좋은 것 같은데(옷 차림, 차나 대중교통의 상태, 건물과 집의 수준), 물가는 모로코 보다 저렴한 편이라(교통비, 음료, 식당의 음식 값으로 판단할 때) 일반 서민들에 있어서는 정말 살만한 나라일 것 같다. 사람들 자체도 웃음도 많고 여유 있어 보인다.

 

 

한 동안 앉아 바닷 바람을 쐬다가 모나스티르 메디나 옆 시장에서 포도(1.6디나르/kg)와 토마토(0.6디나르/kg, 약 360원)를 좀 샀다. 전철 시간에 맞춰 다시 기차역에 간 후 수스(Sousse)로 돌아왔다. 어제 못 가본 카타콤스(Catabombs, 15000여명의 기독교인이 잠들어 있다는 5.5km에 이르는 지하 터널 무덤)를 구경하러 찾아 갔는데 고생해서 걸어간 보람도 없이 이번에도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오늘은 정말 유적지에 대한 관람 운이 없는 날인 듯 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내부의 사용 흔적이 별로 없고 황폐한 모습으로 보아 아마도 한 동안 전혀 문을 열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영화 속에서나 보던 모습은 상상 자체로 남겨두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와 쉬다가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 멀리서 여전히 어제의 결혼식 음악이 들려 오는 것으로 봐서는 결혼식 6일째의 밤이 한창 무르익는 것 같다. 6일간의 춤과 노래로 가득 찬 결혼식이라니 아무리 즐거운 일이라도 모든 행사가 끝나고 나면 정말 뻗어 버릴 것 같다.

간당간당 하게 되다 말다 하던 SD card reader가 어제 밤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태훈이 형한테 선물 받아서 거진 6년간 아주 잘 썼는데 짐 속에서 잦은 충격에 버티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노트북으로 옮길 방법이 없어져 버려서 어제, 오늘 사진은 불완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