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튀니지]

[D+253/2014.8.27/수스, 엘젬, 가베스/튀니지] 가슴 떨리는 또 하나의 콜로세움, 엘 젬(El Jem)

빈둥멀뚱 2014. 8. 28. 06:26

 

 

-숙소를 나오다 찍은 메디나 안 리바트(성채, 요새)의 모습-

운스를 하고 짐을 챙겨서 옥상 방이 정말 좋았던 가베스 호텔을 나섰다. 그리고는 우리가 매일 같이 찾는 식당(기차역 맞은 편 뒷 골목 사람들이 분비는 과일 주스 가게 앞)에 닭볶음탕 맛이 나는 샥쇼우카(chakchouka)를 아침으로 먹으러 찾아갔는데 새로운 맛을 시도해 보고 싶어서 같은 빛깔의 족발을 시켰다.

 

 

새로운 닭 볶음탕 맛의 족발을 기대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냄새가 심했고 국물 맛도 전혀 달랐다. 결국 한 입만 먹고 대부분을 남긴 채 빵만 조금 먹다가 수스(sousse)역에서 11시 37분 출발 기차를 기다렸다.

 

-튀니지 기차 시간표-

 

 

인도 열차만큼은 아니지만 튀니지 열차도 연착이 심각한 것 같았다. 역시나 어떠한 안내 방송이나 문구도 없이 기차는 1시간 정도를 연착했다. 엘 젬에서 다시 가베스(Gabes)로 출발하는 열차가 3시 48분이라 시간적 여유가 있어 다행이었지만 엘 젬 출발 기차 시간이 더 빨랐다면 표를 못 쓸뻔했다. 2등석에는 자리가 없어 시원한 1등석 기차 연결 칸에 자리를 잡았다.

 

2시 정도가 되어서야 도착한 엘 젬 기차역에서부터 한 눈에 콜로세움이 보였다. 기차역에 짐을 좀 맡기려고 찾았으나 너무나 작은 역이라 짐 맡기는 곳도 없었다. 배도 고프고 해서 기차 역 앞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싸간 빵, 치즈, 포도, 토마토로 점심을 먹었다. 커피와 민트 티가 0.4디나르 정도 밖에 하지 않는 정말 저렴한 찻집이었다. 시원한 음료수를 하나 더 사며 짐을 좀 맡아 달라고 부탁하고는 콜로세움을 구경하러 갔다.

 

입장료 10디나르(국제 학생증 제시하면 공짜)를 내고 들어간 엘젬의 콜로세움은 정말 규모가 엄청났다. 터키의 파묵칼레에서 봤던 극장이 15000명을 수용할 수 있고 에페스의 대극장이 25000명 수용이 가능한 규모라고 했는데 오늘 들어간 엘젬의 콜로세움은 약 30000명이 수용 가능한 대규모 극장으로 로마 시대 콜로세움 중에서 3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위에서 내려다 본 콜로세움 입구 쪽과 엘 젬 마을의 전경-

 

 

이 곳 역시도 터키의 대극장들처럼 공연을 하기도 하고 검투사의 죽음으로 끝나는 검투사 간의 혹은 동물과의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던 장소이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의 장면이 다시 한 번 떠오르며 싸움을 위해 무대로 나가야 했던 사람들의 심장이 얼마나 뛰었을까 생각이 들면서 착잡해지고 내 가슴도 덩달아 떨렸다.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변을 돌아보는 데 그 동안 봤던 곳과 비교할 때 정말 압도적으로 보존 상태가 좋았다. 터키의 것 들과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콜로세움으로 약 1800년 정도가 된 유적 치고는 정말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 거의 남아 있는 훌륭한 모습이었다.

8월 중에는 공연이 여러 날 잡혀 중앙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오늘 밤에도 읽을 수는 없었지만 클래식 공연이 있는 듯 했다. 1800년 된 무대에서 시원한 밤 바람을 맞으며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상당히 매력적이라 끌리긴 했지만 가베스로 일단 향하기로 했다.

 

-찻 집 앞에 서서 주인을 기다리던 나귀-

 

 

시간이 조금 남았길래 다시 커피 한잔을 마시고는 (카푸치노 0.5디나르, 약 300원) 짐을 찾아서는 기차역으로 갔다. 혹시나 해서 정시에 맞춰 갔지만 역시나 기차는 1시간 반 가량을 연착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그늘에 앉아 아침에 샀던 맥주를 마셨는데 전혀 시원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부는 바람과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며 앉아 있으니 먹을 만 했다. 미지근한 맥주는 가장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였는데 아프리카를 여행하다 보니 그나마도 적응되면서 먹게 되는 것 같다.

 

모로코도 그렇고 튀니지도 그렇고 우리는 어디를 가도 눈에 띄는 확연한 외국인의 외모를 갖고 있기 때문에(아시아 사람이므로), 늘 현지 아이들의 주된 관심의 대상이 된다. 내가 어렸을 적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시키던 것처럼 현지 부모들 중에도 아이들에게 가서 영어로 말을 걸어 보라고 아이의 등을 떠미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멀리서 아이들이 자꾸 쳐다 보길래 웃어 주고 손을 흔들어 주었더니 그 때부터 애 엄마의 말 그대로 등떠밀기가 시작된다. 곁눈질로 보니 오빠와 여 동생을 세워 놓고 계속 작전을 지시하는 듯 했고 결국 좀 더 용감한 오빠를 앞 세운 오누이가 와서는 나의 이름을 묻고 자신의 이름이 모하메드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어떻게 지내냐고 묻길래 우린 잘 지낸다고 대답해 주었다.

 

당연히 올 때는 엄청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다가 오지만 돌아갈 때는 정말 빠르게 엄마에게 돌아간다. 마치 어렸을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예전의 내가 생각나기도 하고 둘의 표정이나 몸짓이 정말 귀엽기도 해서 많이 웃어 주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잠시 후 아이는 다시 한 번 와서 과자를 주고 갔다. 아이의 성의를 고맙게 받고 인사를 한 후, 멀리 아이 엄마에게도 고맙다는 눈짓과 손짓을 했다. 나에게처럼 그 아이에게도 좋은 추억이 되길..

 

 

기차는 3시간여를 달려 8시에 가베스(Gabes)에 내려주었는데 내리자 마자 엄청난 습도가 엄습했다. 그 동안 이 정도로 습한 곳이 없었는데 마치 방콕 돈 무앙 공항에 내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숙소를 찾으러 걷는 동안에도 옷이 습해지고 달라 붙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숙소도 많지 않았고 선풍기 조차 없는 데 이런 엄청난 습도 속에서는 잠 한 숨 못 잘 것 같아 흥정 후에 에어컨 방을 30디나르에 잡았다.

그리고는 너무나 배고파 카메라고 핸드폰이고 아무것도 챙기지 않고 식당을 찾아 피자와 오짜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에어컨이 있으니 숙소가 정말 천국이라 식사만 마치고 바로 방으로 돌아와 씻고 푹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