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튀니지]

[D+255/2014.8.29/마트마타/튀니지] 또 하나의 영화 촬영지, 마트마타

빈둥멀뚱 2014. 8. 30. 05:32

 

역시나 시원한 에어컨 덕분에 편안하지만 조금은 쌀쌀한 그러나 상당히 만족스러운 밤을 보냈다. 씻으며 빨래를 좀 해서 작렬하는 태양 아래 널어 두고 짐을 챙겨서는 아침을 먹으러 나섰다. 간단하게 빵을 두 개(2개 1.6디나르) 사서 흔한 커피점에서 카페오레(0.4디나르)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하나는 계란이 들어있는 빵이었고 다른 하나는 계란과 야채가 토마토소스와 함께 버무려진 빵이었는데 토마토 소스 때문인지 마치 피자 같은 맛이었다.

 

12시 15분 차를 타기 위해 여유 있게 출발하려는 데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서서 기다리고 있는 샌드위치 집을 발견했다. 다음 버스를 타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런 맛 집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라 망설이지 않고 들어가 기본 샌드위치 두 개를 계산하고(1개 1.8디나르) 써준 종이를 들고 사람들 뒤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두 분이 샌드위치를 만드는 아주 조그만 가게였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데도 그 둘의 손은 느리기 그지 없었다. 우리나라의 대박 맛 집이고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면 보지 않아도 그 집 주인의 손은 엄청나게 빠를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순대 집이면 순대 썰기의 장인일 것이고 우동집이면 대충 국물을 퍼도 정확히 한 그릇에 딱 맞게끔 풀 것이며 스파게티 집이라면 양손에 프라이팬을 지긋이 잡고 토마토 소스를 볶으며 눈은 삶아지는 스파게티의 면을 응시하고 입으로는 휘파람으로 ‘what a wonderful world’를 흥얼거릴 것이 뻔하다.

내가 말하려는 바는 이 둘은 우리나라 대박 맛 집에서는 전혀 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들의 여유로움을 탓할 정도의 몰지각한 사람이 아니므로 내가 샌드위치 사는 순간의 가게의 풍경을 가볍게 묘사할 뿐이다. 역시나 여유로운 가게에는 여유로운 손님들이 들어설 수 밖에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차례이든 아니든 요리사들이 바게트 빵을 천천히 썰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아슬아슬하게 버스 시간에 맞도록 샌드위치를 받아 들 수 있었다. 맛이 궁금하긴 했지만 방금 빵을 먹었고 버스 시간도 빡빡해서 일단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늘 타던 오래된 관광버스 쯤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시내 버스였다(1인 2.08디나르). 물론 시외를 운행하기는 하지만..

 

자리도 좀 넉넉하고 에어컨은 나오지 않았지만 햇빛만 잘 막는다면 불어오는 바람으로 충분히 시원했기 때문에 마트마타(Matmata)까지의 여정은 전혀 고되지 않았다. 가는 길의 풍경은 역시나 건조한 사막 지형답게 나무는 적었고 상당히 황폐했다. 버스는 신마트마타(matmata nouvelle)를 지나 스타워즈 촬영지가 있는 구 마트마타에 우릴 내려 주었다. 2시쯤에 도착한 우리는 배가 고파서 삼거리 찻집에 자리를 잡고 앉아 민트티와 카페오레를 시켰고 사간 샌드위치를 먹었다.

참치, 올리브, 양파, 고추장아찌, 매운 소스, 감자가 들어 있는 샌드위치였는데 프렌치 프라이를 넣어 주는 일반적인 튀니지 샌드위치와는 달리 삶은 감자를 넣어주는 점이 특이했고 고추장아찌도 흔하지 않은 재료였다. 이 두 가지 재료로 인해 다른 샌드위치와는 달리 맛이 상당히 좋았다.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은 샌드위치를 샀다는 것에 상당히 만족해서는 마을 구경을 시작했다.

 

-마트마타에 위치한 새로 지은 모스크-

 

오토바이를 탄 동네 아저씨들이 현지인 집을 안내해 주겠다며 호객행위를 했지만 일단 걸으며 마을을 구경할 작정이라 거절했다. 걷다 보니 투어 버스가 여러 대 정차해 있는 곳이 있길래 가보았더니 역시 스타워즈 촬영지(Hotel Sidi Driss)였다. 스타워즈의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Luke skywalker)의 고향으로 묘사된 곳이었는데 촬영할 때 쓰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문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 곳은 옛날 사람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커다랗게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주변에 동굴을 몇 개 파서 방으로 사용하면서 살던 특이한 주거형태인데, 위 쪽에서 보면 마치 폭탄이 터진 자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워낙 오래 전에 봤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대충 장면이 떠오르는 것 같아 신기해 하면서 구경을 했다. 하지만 마침 점심 시간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관광객들이 식사를 위해 이 호텔을 찾고 있었다.

 

입장료 1디나르를 받는 듯 했지만 입구에 사람도 없고 워낙 관광객에 정신이 없길래 그냥 틈새에 껴서 적당히 구경하다가 다시 나왔다. 위에 바라 보는 모습을 한 번 보고 싶어 살짝 위로 가서 내려 봤더니 상당히 많은 구덩이가 있었다. 좁은 것부터 넓은 것까지 크기도 다양했고 깊이도 각기 달랐다. 2-3층 깊이 정도였는데 위에서 내려보기에 제법 무서운 정도의 높이였지만 안에 살기에는 정말 시원했을 것 같다.

 

싸가지고 간 맥주 한 캔을 나눠먹으며 마을 한 바퀴 산책하면서 호텔로 변했거나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옛 집을 구경했다. 너무 뜨거운 시간이었고 도통 그늘이 별로 없는 마을이라 적당히 보고는 다시 찻집으로 돌아와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알고 보니 버스 터미널이 따로 있었기에 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타고는 가베스(Gabes)로 돌아왔다. 가베스 마을 뒤쪽에 야자수 숲이 있다 길래 가 볼까 했지만 생각보다 황폐한 곳이라 그냥 숙소로 돌아왔다.

 

배가 고파 첫 날 먹었던 해산물 오짜(ojja fruit de mer, 9디나르)와 바게트 빵 한 개(0.23디나르)를 사와서 얼음 넣은 맥주와 함께 정말 맛있게 먹었다.

 

 

오늘은 우리 호텔에서 결혼식이 열린다고 하더니 조금 전 10시부터 식이 시작되는 듯 엄청나게 큰 음악소리와 노래 소리가 들린다. 결혼식 구경 운이 나에게는 정말 충만한 듯 하다. 좀 구경하다가 짐을 싸고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