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튀니지]

[D+256/2014.8.30/가베스, 토제르/튀니지] 개점 휴업 도시 토제르

빈둥멀뚱 2014. 8. 31. 05:27

토제르행 9시 15분 차가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아봐 두었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 어제 먹었던 인기 샌드위치 집에서 샌드위치를 사서는 근처 카페에서 커피(0.8디나르= 800미리엠)를 마시며 샌드위치 한 개를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는 버스 터미널을 향해 걸었는데 아침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습해서 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터미널에 도착해 짐을 한 쪽에 내려 놓고 땀을 식히며 버스를 기다리는데 대부분의 버스에는 영어가 전혀 쓰여 있지 않았다. 아라비아어만 적혀 있는 버스를 바라보며 까막눈인 우리는 매번 버스가 들어 올 때 마다 달려가 기사에게 ‘토제르(Tozeur)?’라며 물어 볼 수 밖에 없었고 번번이 다음 버스라는 이야기만 들을 뿐이었다. 물론 다음 버스인지 다다음 버스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기에 그냥 손짓으로 ‘이번 버스가 아니고 다음 버스라고 했겠지’라고 추측만 할 뿐이었다.

가베스(Gabes)는 제법 큰 도시이지만 토제르행 버스는 아마 다른 곳에서 출발해서 이곳을 거쳐 가는 듯 했고, 한 동안 기다리다 보니 9시 반이 훨씬 넘은 시간에서야 버스가 도착했다(1인 10.21디나르). 튀니지에서는 기차와 마찬가지로 버스도 지정좌석제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버스가 정차하자 득달같이 달려 들었다.

나는 짐을 실어야 했기에 일행에게 들고 탈 가벼운 짐만을 맡기고 좌석확보를 부탁했지만 현지 아저씨와 덩치 좋은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일행이 어깨 싸움을 이기고 버스에 뛰어 올라 자리를 확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별 기대 없이 나는 짐을 버스 짐칸에 잘 실어 놓고는 버스에 올라 타보니 일행이 운전석 뒤의 아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자리를 잡아주신 감사한 차장 할아버지-

너무 놀랍고 신기해서 대단하다며 잔뜩 치켜세워 주고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해서 무용담을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들어 보니 역시나 현지인들 사이에서 이리 저리 밀리며 버스에 계속 오르지 못하고 있었는데 옆의 아저씨가 빨리 타라며 챙겨 줬다는 것이다. 그리고 버스에 올라 타서 보니 차장 할아버지가 운전석 뒤의 좋은 자리를 맡아 두었다가 수연이에게 내주어서 자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정말 감사하고도 운이 좋은 사건이었다.

이 차장 할아버지는 이후에도 여러 번 우리가 괜찮은지 살피셨고 버리려고 챙겨놓은 쓰레기를 대신 처리해 주기도 하신 정말 너무나도 고마운 분이셨다. 물론 우리는 열심히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버스는 오래되어 많이 낡았지만 에어컨이 무리 없이 잘 나와 우리는 정말 시원하고 편안하게 토제르를 향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에 2대 밖에 없는 버스이고 타려는 승객은 많았기 때문에 제법 많은 사람들은 복도에 서서 가다가 자리가 나면 앉아서 가곤 했다.

튀니지의 대부분은 도로는 상당히 좋고 큰 도시 아니면 차가 거의 막히지 않기 때문에 중간에 정차를 해서 30분 정도를 쉬었음에도 4시간만인 1시 반쯤 토제르에 무사히 도착했다. 토제르 가는 길에는 아주 잠깐 조금이기는 했지만 아프리카에 온 이후에 처음으로 비가 내렸다. 토제르에 도착해서 비를 바라보며 맥주를 먹는 상상을 하며 잠깐 즐거워 했었는데 비는 창문도 다 적시지 못하고는 멈춰 버렸다.

 

 

다시 한번 운전사와 차장 할아버지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열심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숙소를 찾았다. 토제르는 기대와는 달리 가베스처럼 꽤나 습한 곳이었기에 우리는 무사한 밤을 지내기 위해 선풍기가 있는 숙소를 잡았다(20디나르).

 

조각 치킨으로 점심을 먹고는(10디나르, 아저씨가 기대보다 음식값을 상당히 비싸게 받음) Tamerza, Midas, Chebika를 아우르는 투어를 알아 보러 다녔다. 마음 같아서는 마트마타(Matmata)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우리끼리 갔다 오고 싶었지만 목적지가 마을이 아니라서 교통편도 없고 세 곳을 다 대중 교통으로 보기에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될 것 같아 그냥 투어를 통해 하기로 했다. 하지만 토요일이라 그런 것 인지 아님 워낙 사람이 없어서 투어 회사들이 다 문을 닫은 것인지 열심히 돌아 다녀 보았지만 2곳 밖에 문을 연 곳이 없었다. 두 곳의 투어 가격은 똑같았고 내일 가려고 신청한 사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우리 둘만 갈 경우 총 120디나르, 4명 이상 갈 경우에는 1인당 50디나르를 내야만 했다.

 

워낙 투어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큰 돈을 부담하면서까지 둘만의 투어를 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 투어를 포기하고 오토바이나 차를 대여해서 다녀올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나마 렌트카 업체도 문을 연 곳이 전혀 없었다.

 

결국은 고민을 좀 해보기로 하고 일단 야자수 숲길을 좀 산책했다. 야자수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 자루에 담아 쌓아 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고 도둑을 방지하기 위한 것인지 높은 담으로 둘러 싸고 여기 저기 제법 크고 멋있는 문을 설치해 둔 것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를 가도 관광객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나마 현지인들이 드문 드문 돌아다닐 뿐이었다. 낮에 숙소를 구하러 다닐 때는 단체 여행객 버스를 한 대 봤는데 토제르 역시 단체 관광객들이 머무르며 숙박을 하는 곳은 아닌 듯 했다. 뭐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산책길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주말이라 그런 것인지 도시 전체적으로 문을 닫은 상점이나 식당이 상당히 많았고 사람도 워낙 적어 도시가 죽어 있는 것 같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술을 사러 온 주유소 옆 맥주 상점 앞의 많은 사람들(안에는 더 많은 사람이..)-

다행히 맥주 파는 곳을 수소문해서 갔더니 말도 안되게 시원한 맥주를 팔길래 위안 삼으며 마시고 나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유일하게 맥주 가게 앞이 이 도시 전체에서 가장 붐비고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 맥주도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서야 살 수 있었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술을 사러 온 아저씨들의 흥겨운 얼굴들을 보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는 동네 식당을 찾아 저녁을 먹고는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은 일요일이라 여행사들이 문을 더 열라는 보장이 없기에 우리는 그냥 분위기가 축축 처지는 토제르를 떠나 레 케프(Le kef)로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