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튀니지]

[D+258/2014.9.1/르케프/튀니지] 카스바의 여인(응!?)

빈둥멀뚱 2014. 9. 2. 05:09

르케프의 밤은 시원했고 새벽은 좀 쌀쌀한 정도였다. 늦게까지 자자고 했던 일행이 어느새 보니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는데 난 조금은 더 자고 싶어 침낭 속으로 더욱 파고 들었다. 하지만 어느 새 잠이 깨어 같이 일어나 스트레칭을 했다. 밖으로 나와 보니 어제보다는 문을 연 가게가 훨씬 많기는 했지만 조그마한 구멍가게이거나 옷 가게 아님 신발 가게, 약국 같은 것들이었다. 정말 이상하리만큼 르 케프에는 식당이 없었다. 내가 튀니지 사람이라면 당장이라도 이 곳에 식당을 차렸을 것 같다.

 

돌아다니다 겨우 발견한 샌드위치 가게에서 서로 다른 빵에 샌드위치를 하나씩 먹었다(각 1.7디나르). 오늘은 메디나 위 쪽으로 보이는 카스바(Kasbah, 성채, 요새)에 올라가 보기로 하고 슬슬 걸어 갔다. 카스바를 향하는 계단의 나무 그늘에는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인지 세 커플이나 곳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카스바의 입구에 도착했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매표소 같은 것도 보이지 않고 사람이 드나 드는 흔적도 없길래 사람이 못 들어가는 곳인가 싶어 주변을 걸으며 아래쪽의 경관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다시 돌아가려는 데 아저씨 한 분이 별일 아니라는 듯이 굳게 닫힌 성문을 열고 자연스럽게 걸어 나오셨다. 혹시나 싶어 들어가도 되냐고 물으니 흔쾌히 들어오라고 하셨다. 이 때만 해도 이 아저씨가 이 성의 주인인가 의심했다.

 

카스바의 안쪽은 상당히 멋있었다. 두 개의 공간으로 크게 나뉘어 있었는데 입구를 통해 올라가는 길 한 켠에는 대포가 줄지어 서 있었고 성벽이나 문 등의 보존 상태도 상당히 좋아 정말 그럴듯해 보이는 공간이었다. 길을 따라 또 다른 문을 통해 들어가 성벽을 걸으며 둘러 보고 아래로 보이는 르케프의 마을을 내려다 보면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냈다. 관광객이나 다른 사람도 전혀 없어서 우리만 은근한 행운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성 안 광장에는 몇 일 전에 공연이 있었던 듯이 아직 의자가 정돈 안된 체 놓여 있었다. 8월은 라마단이 끝나고 축제의 기간이 계속 되는 것인지 어디를 가던 공연이 상당히 많은 듯 하다.

 

-카스바 앞 바실리카-

 

성 안을 곳곳이 구경하고는 바로 근처에 있는 바실리카(Basilica, 대회당, 시기에 따라 창고, 교회, 모스크로 쓰였다고 함)와 그 옆에 있는 미나렛(minaret, 모스크의 첨탑)을 밖에서만 구경했다. 미나렛 앞에 멋진 나무와 한가하고 조용한 카페가 있길래 잠시 앉아 민트티를 마셨다.

 

바람도 시원하게 많이 불고 그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며 부딪혀서 기분 좋은 소리를 내고 있었으며 하늘도 파랗고 흰 벽과 초록 문의 조화가 멋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있는데 옆 테이블의 현지 아주머니들이 오시더니 한번 먹어 보라며  배시사(튀니지 잡곡과 꿀, 향신료를 넣은 미숫가루 느낌의 건강음료)를 한 잔 주고 가셨다. 조금 진하고 향이 강한 편이긴 했지만 맛도 좋았고 건강한 느낌이라 우리는 번갈아 가며 마시며 한잔을 몽땅 비웠다.

 

메디나를 좀 더 걸으며 둘러 보다가 우연히 아니 드디어 와이파이가 되는 카페를 발견했다. 나중에 와서 인터넷을 좀 쓰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와 밀린 블로그를 좀 썼다. 그리고는 정말 오랜만에 카페에 가서 블로그 업로드를 했다. 튀니지에서는 생각보다 인터넷 사용이 용이하지 않다. 아직까지는 와이파이가 널리 들어 온 것 같지는 않다. 숙소 방에서는 전기 사용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터넷을 쓰며 핸드폰과 노트북까지 열심히 충전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나마 인터넷이 빠르지가 않아서 밀린 블로그를 올리는 데 제법 시간이 오래 걸렸다.

무한도전도 받길 꿈꿨지만 꿈으로 남겨두고는 타바르카(Tabarka)가는 버스 편을 알아보러 대형 마트 건너편에 있는 루아지 터미널로 갔다. 루아지는 아침부터 약 1시간마다 한대씩 있다는 듯 했고 한 사람당 8.7디나르라고 했다. 좀 비싼 듯 해서 멀리 있는 버스 터미널까지 걸어가서 시간을 알아봤는데 12시에 단 한 대 있고 7디나르라고 했다. 고민하다가 아직 루아지를 한 번도 타보지 않아 가까운 루아지 정류장에서 타고 타바르카를 가기로 했다. 오고 가는 길에 그럴듯한 식당이 있을까 싶어서 눈을 부릅뜨고 열심히 살폈지만 식당이라고 해도 문을 닫는 중이거나 사람이 전혀 없는 식당들 뿐이었고 그나마도 몇 개 되지 않았다. 치킨이 뱅뱅 돌고 있어야 할 전기구이 통 안에는 정지해 있는 마른 치킨만 보였고 텅텅 비어 있는 식당에서는 도저히 식사를 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점심도 제대로 먹지 않아 엄청나게 배가 고프고 빈 속으로 다시 메디나를 향하는 오르막길을 올라야 해서 좀 힘들긴 했지만 일단은 끝까지 가 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메디나를 향하는 큰 길 왼편에 있는 말리부라는 식당을 발견했고 그 곳은 손님들로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간신히 테이블을 잡고 앉아 흔히 알고 즐겨 먹었던 해산물 오짜(혹은 에짜, ejja fruit de mer, 7디나르)와 처음 보는 코르돈 블레우(cordon bleu, 7디나르, 고로켓 같은 맛으로 안에 햄과 치즈가 들어있음)를 시켰다.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들이 닥쳤고 배가 고픈 만큼 나의 기대감은 오페라 가수가 부는 풍선 껌처럼 격렬히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나온 해산물 오짜는 기대 이하였다. 가베스에서 너무나도 신선한 해산물이 들어간 오짜를 경험해서인지 오늘 먹은 오짜의 해산물은 신선도도 떨어졌고 매콤한 부대찌개 맛이 나야 할 양념도 어설프기만 했다. 하지만 같이 시킨 코르돈 블레우는 맥주 안주감으로는 정말 딱이었고 마침 가방에 챙겨간 맥주를 휴지 싸서 몰래 마시며 배를 단단히 채웠다.

 

엄청난 포만감으로 밤길을 걸어오는데 달이 상당히 밝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굉장히 까맸고 그러다 보니 별도 신비하게 잘 보였다. 밝은 달 옆으로 별이 많이 보이는 하늘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대단히 신기했다. 보통 삼각대를 장착하고 노출을 길게 하지 않으면 담기 힘들었던 별을 오늘은 카메라를 그냥 들고 찍었는데도 선명하게 사진에 잘 담겼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다시 낮에 인터넷을 썼던 시르타 카페(cafe cirta)로 돌아와 커피를 한 잔 먹으며 주인에게 들으니 이 곳이 문을 연지 4개월 밖에 안 된다고 했다. 카페 주인인 가산은 캐나다에서 4년이나 살다 온 경험이 있어서 영어가 상당히 잘 통했는데 우리에게 열정적으로 튀니지의 이곳 저곳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와 한동안 이야기를 하다가 오늘 하루를 정리하며 블로그를 쓰고 있다.

르케프는 기후도 정말 좋고 메디나의 카스바나 계단 길도 예쁘고 관광객이 거의 없어 한가롭긴 하지만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 먹을 만한 식당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마을 자체에는 정말 활기가 넘쳐 산책을 하거나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주변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