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터키]

[D+166/2014.6.1/사프란볼루/터키] 조용하고 아름다운 작은 마을, 사프란 볼루

빈둥멀뚱 2014. 6. 2. 05:11

 

11시 반에 정확히 출발 했던 버스는 5시 반 쯤 우리를 사프란 볼루 터미널에 내려주었고 미리 기다리던 세르비스(servis, 셔틀 버스)를 타고 키란코이(kirankoy)에 있는 사프란 볼루 사무실로 갔다. 사프란 볼루는 크게 두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키란 코이가 좀 더 시내 쪽이고 주로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곳은 2km 정도 떨어진 차르지(Carsi) 지역이다.  숙소가 상대적으로 싼 것으로 예상 되는 키란 코이에서 방을 잡으려고 슬슬 걸어 다녔으나 놀랍게도 다니는 숙소마다 방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싱글 50TL, 더블 60TL을 부르는 숙소에 짐을 임시로 맡기고는 아침을 먹으러 나섰다.

이름 없는 자미(모스크) 앞에서 참깨 빵과 터키식 짜이를 먹으며 앉아 있으니 일찍 일어난 할아버지들이 한 분, 두 분씩 차를 마시러 나오셨다. 우리를 보고는 반가워 하시며 ‘메르하바’하고 인사를 건내기도 하시고 손인사를 하거나 악수를 청하는 분들도 계셨다. 우리가 자리 잡은 찻집이 동네 사랑방인지 여러 분들이 우리 주변에 앉아 짜이를 드셨다. 한가롭고 여유롭게 앉아 비둘기 먹이를 주는 할아버지를 바라 보며 앉아 있으니 밤새 달려온 피로가 모두 풀리는 느낌이었다. 비가 와서 공기는 선선하고 산뜻했고, 주변의 거리나 건물들은 이색적이고 새로웠으며 깨끗했다.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으신 할아버지는 이가 많이 남지는 않으셨지만 멋진 흰 콧수염과 너그러운 미소를 가지고 계셨다. 일요일 이른 아침에 옷을 말끔하게 차려 입고 나와 차를 한잔 하시는 어르신 들의 모습을 보자 조용한 시골 마을 특유의 고즈넉함이 느껴졌다.

한참을 앉아 어르신 들과 눈인사를 하며 주변 풍광을 즐기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차르지 쪽을 향했다. 사프란 볼루는 전체가 유네스코로 지정되어 있는 마을인데, 오스만트르크 제국 풍의 오래된 전통 가옥들이 유명하고 이러한 가옥들을 호텔로 바꾸면서 손님을 받아 오랜 전통 가옥에서 숙박을 할 수 있는 것이 크게 매력적이라고 했다. 차르지 가는 길도 이른 아침이다 보니 한산했다. 집이 끝나고 들판과 나무들이 막 나오려는 지점에서 머리를 손수건으로 감싼 노란 머리의 터키 아주머니가 나무에서 무언가를 따 먹고 계셨다.

걷다가 궁금해져서 몇 발자국을 돌아와서 손을 뻗어 한 두 개를 따 먹었는데, 아주머니께 이것 맞냐고 물으니 먹어보라면서 잘 익은 과일 몇 개를 따 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도츠(dut, 오디 혹은 뽕나무 열매)였는데, 잘 익은 것은 정말 맛있었다. 딸 때도 잘 익은 것은 손만 대도 툭툭 떨어졌고 입에 넣는 순간 부드럽게 부서지며 설탕과 같은 당도로 과실액이 쭉하고 솟아 나왔다. 정말 정말 단 부분의 수박을 입에 넣는 것과 같은 당도와 과실즙이었다. 이후에도 걸으면서 자주 오디 열매를 발견하고는 연신 따 먹으면서 행복해 했다. 길거리 걸으면서 과일을 바로 따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늘 과일은 비싼 사치품 같은 것이었는데..

오디를 따주신 아주머니께 감사하고 맛에 감탄하며 다시 차르지쪽을 향했다. 가는 길에 왼쪽으로 언덕이 멋있어서 한 바퀴 돌아 산책을 하다가 차르지쪽으로 방향을 틀어 걸어갔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 것인지 토요일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고, 아직 관광객들도 많지 않았다.

골목 골목을 다니면서 유럽 분위기(?)가 물씬나는  도로와 가옥을 구경하고 아라스타 바자르(Arasta bazar)도 구경했다. 20세기 초까지 구두 만드는 공방이 몰려 있었다는 이 곳도 이른 시간이라 대부분이 문이 닫은 상태였다.

마을 중심지에 있는 자미 앞에 앉아 잠시 구경을 하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와 태현이가 준 컵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아침에 조금 쌀쌀해서 컵라면이 정말 당겼는데, 오후에는 따뜻해져서 조금 덜 하긴 했지만, 여전히 굉장히 맛있었다. 라면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정말 맛있는 음식이다.

노근해져서 잠시 눈을 붙인다는 것이 일어나니 저녁 6시 반이었다. 하지만 해가 긴 터키는 여전히 꽤 밝았기 때문에 슬슬 걸어서 다시 밖을 향했다. 그리고 두 말 할 것이 없이 사람이 많아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터키식 전통 피자인 라마쿤(Lamahcun, 4TL)과 다나 시스(소고기 케밥16TL), 아이란(터키식 요거트), 에조 제린 조르바(ezo gelin corba, 콩스프, 5TL)를 시켰는데, 이곳에는 화덕을 갖추고 있는 곳이라 무한대로 주는 기본 빵도 정말 맛이 있었다. 라마쿤, 다나 시스, 아이란, 기본 샐러드와 빵까지 뭐하나 맛 없는 게 없어서 정말 사람들이 왜 터키하면 음식음식하는 알 수 있었다. 우리야 인도에 있다가 와서 값이 좀 비싸게 느껴졌지만 다른 유럽 지역을 여행하다가 터키오면 정말 싸고 맛있게 느껴질 것 같다.

나는 만족스러움에  방실방실 웃으며 밥을 아니 빵과 고기를 먹었고, 가득 찬 배를 안고 다시 보슬보슬 비 내리는 거리로 나왔다. 다시 저녁 산책을 차르지쪽으로 나섰다. 어느 새 시간은 9시가 거의 다 되어 있었는데, 어둑한 하늘 속에서도 아직은 빛이 조금 남아 있었다.

비는 점차 그쳤지만 나무들은 빗방울을 온전히 머금고 있었고 풀 냄새를 가득 담고 불어 오는 밤은 나에게 또 한번의 황홀감을 선사했다. 숨을 깊이 들이 쉬면서 사람 없는 사프란 볼루의 밤 거리를 걸었다. 곳곳에 설치된 주황색 혹은 녹색의 조명은 낮과는 또 다른 깊이를 선사했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김동률의 ‘출발’은 더 없이 적절한 음악이었다.

가사 하나하나가 나의 여정과 너무나 닮아 있어서 귀에 쏙쏙 들어왔다. 다시 밤거리를 한 바퀴 돌아보고는 숙소로 돌아와 가지고 다니는 물끓이기를 간만에 이용해서 차를 한잔 마시고는 블로그를 열심히 썼다.

사프란 볼루.. 버스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깐 들려 보고 카파도키아에 가거나 1박을 하고 아침 일찍 도망치듯 빠져 나가는 곳처럼 여기지만 나무로 된 고즈넉한 숙소와 친절한 사람들이 있고, 길거리에서 맛 좋은 과실을 따 먹으며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정말 멋진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