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터키]

[D+162/2014.5.28/델리, 알마티, 이스탄불/터키] 황홀한 아스타나 항공

빈둥멀뚱 2014. 5. 29. 05:44

아침에 부지런히 짐을 싸고 밖으로 나가 보니 약속 시간에 정확히 맞춰 오메쉬 아저씨가 택시를 한 쪽에 세워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올라서 공항으로 가려는데, 아저씨가 30미터도 가기 전에 차를 세우더니 짜이 한 잔 하겠냐고 했다. 우리도 생각보다 늦게 일어나서 출출했는데, 잘 됐다 싶어서 같이 내렸다. 알고 보니 외상값을 청산하려고 하는 거였다. 시간은 7시 40분을 막 넘어가고 있었지만 차를 한 잔 마시니 이미 땀이 흐르고 있었다.

다행히도 차는 막히지 않아 쉽고 빠르게 도착한 공항은 새 공항으로 바뀌어 있었다. 인도 수도의 공항 답지 않게 작고 허름하던 델리 공항이 이제 제법 공항다운 모습으로 크고 화려하게 변해 있었다. 오메쉬 아저씨에게 350루피를 건내고 어제와 오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공항으로 들어갔다. 오메쉬 아저씨처럼 시간 약속 잘 지키고 손님 배려해 주는 인도인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인도의 마지막 모습은 그래도 좋네’라며 즐거워 했지만, 이는 곧 오산임이 밝혀졌다.

짐을 체크인하고 시간 여유 있게 내부로 들어가서 면세점에서 고프로(GoPro)를 싸게 팔면 하나 살까하고 남은 루피를 손에 꼭 쥐고는 둘러보고 있었다. 하지만 공항 규모에 비해 면세점은 택도 없이 작았고 그나마 전자 제품을 파는 곳은 한 곳이었는데, 고프로를 팔고 있지 않았다. 허탈해하며 햄버거를 시켜 놓고 남은 루피를 환전하러 면세점 근처 환전소로 갔다.

 

역시나 말도 안되는 67INR->1USD로 환전을 해주고 있었는데, 그나마도 수수료 2달러를 떼어간다고 했다. 보통 있는 돈을 다 주고 환전을 해달라고 하면 환율에 맞춰 수수료를 떼고 환전을 해 준 후, 나머지를 돌려주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돈독에 눈 먼 또 하나의 욕심쟁이 인도인은 ‘너 있는 돈 전체를 주면 20달러 줄게’라는 식으로 반응했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환율에 해당하는 루피만 줄테니 달러로 바꿔 달라고 했다. 그러자 자기는 그런 식으로 거래 할 수 없다며 돈을 못 바꿔 주겠다는 것 이었다. 나는 정말 어이없는 그의 태도에 화가 끝까지 나서 돌아가다가 말고 다시 그에게 가서 사진을 찍고 이름을 물었다. 그는 당황해 하며 이름표를 가리고 움찔했고, 왜 그러냐고 묻기에 컴플레인 할꺼다!라고 했더니, 자꾸 그러면 공항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다.

나는 더더욱 화가 나서 ‘공항 경찰을 부르려면 불러라, 니가 돈 환전을 해줘야 하는데, 자꾸 딴 소리하면서 안 바꿔주면서 무슨 헛소리냐’라고 대답했더니(물론 제법 순화된 한국어 버전으로 표현했을 때), 검은 얼굴이 더욱 검게 변하면서 이 종이를 작성하면 바로 환전을 해주겠다고 했다.

끝까지 욕만 해주고 돈도 안 바꾸고 곤욕을 치르게 한 다음, 다른 곳에서 환전을 하고 싶었지만, 이미 출국장 내로 들어온데다가 환전소는 하나 밖에 없고 시켜 놓은 햄버거는 자꾸 식어가고, 20달러가 아쉬워서 얌전히 종이를 작성해서 주었다.

결국은 22달러에 해당하는 루피만을 주고 2달러를 수수료로 20달러는 내가 챙긴 뒤, 눈을 다시 한번 쏘아 봐 주고는 치킨 햄버거를 먹으러 돌아왔다. 씩씩거리며 돌아가서 햄버거를 먹었지만, 이상하게도 정말 맛이 좋았다. 그리고는 게이트로 가서 잠시 기다리다 비행기에 올랐다.

 

 카자흐스탄의 알마티까지 가게 될 아스타나 비행기는 한 줄에 4명 밖에 못 앉을 정도로 매우 작은 비행기였지만, 좌석은 앞뒤좌우로 매우 넓고 편안해서 정말 만족할 만 했다. 정말 오랜만에 여행하면서 좁지 않고 다리가 여유 있는 자리에 앉아 보는 느낌이었다. 비행기는 부드럽게 이륙했고, 음료를 묻길래 전혀 망설임 없이 맥주를 주문했더니 카자흐스탄어로 쓰여져 있어 읽기가 매우 어려운 독수리 맥주를 갖다 주었다. 그리고 표를 살 때, 주문한 해산물 기내식도 같이 가져다 주었다. 인터넷에서 자리를 예매할 때, 음식을 미리 지정하는 것이 매우 유리한 것 같다. 보통 특별 주문한 사람 먼저 음식을 가져다 주고 나머지 사람들은 한참 후에 자리 위치에 따라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주기 때문에, 특별식 식사가 거의 끝난 후에야 보통 식사를 받을 수 있고 이는 배고픔이 빠르게 찾아오고 음식 냄새에 민감한 나에게는 엄청나게 큰 고통이다.

해산물 요리는 토마토 소스의 연어구이와 샐러드, 케익, 빵, 버터 등이었는데, 정말 맛 좋은 연어 였다. 특히나 음료를 받은 직후에 식사가 나와서 맥주와 함께 즐기는 기내식의 맛은 정말 최고였다. 보통 기내식이 아닌 매우 고급스러운 느낌이었고, 무엇보다 아스타나 항공에서는 맥주를 시키면 일반적인 330ml가 아닌 500ml캔을 갖다 주기 때문에 만족감은 두 배 이상 커졌다.

 

 

 

정말 맛있는 식사를 하고 창 밖을 구경하는 데, 밖에 히말라야에서 본 것 같은 설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처음에는 네팔을 넘어가는 건가 하고 생각했는데, 궁금함에 locus를 켜서 살펴 보니 아프가니스탄을 지나가는 길이였다. 아프가니스탄은 막연히 사막들로 가득할 것 같았는데, 이렇게 험한 산맥이 쭉 이어져 있는 지 몰랐다. 오사마 빈 라덴을 찾을 때 미군이 쉽게 찾지 못했던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창 밖으로 멀리 보이는 설산과 넓고 넓은 평야를 보고 있다 보니 비행기는 알마티에 도착했다. 알마티 공항도 주변이 꽤 넓은 평지였는데, 역시나 저 멀리로는 사방으로 설산이 보였다. 시야가 굉장히 깨끗해서 잘 보이긴 했지만, 엄청 먼 곳에 파란 하늘 아래로 보이는 설산이 보이는 공항에 서 있으니 카자흐스탄에 대한 호감이 저절로 상승했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날씨도 제법 좋아서 카자흐스탄에 나중에 한 번 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대기 시간 2시간 동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면세점을 둘러 보려 했지만, 면세점은 가만히 서서 한 눈에 둘러볼 정도로 작았다. 어렸을 적 외화나 화질 나쁜 영화에서 보던 사람들이 주변에 앉아 있고 여기 저기 걸어 다니는 것을 구경하면서 비로써 인도를 떠나온 것이 실감이 났다. 시간은 금방 갔고 새롭게 오른 한 줄 6명짜리 비행기도 저가 항공기나 혹은 대한항공, 아시아나 보다 넓은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좀 커서 자리도 넓게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상상을 내 맘대로 하면서 자리에 앉아 이번에 나올 기내식을 기다렸다.

 

이번에 음료도 당연히 맥주였는데, 터키 가는 길이라고 에페(EFE)맥주를 선택할 수 있었다. 아까보다는 큰 비행기라 전 보다는 느렸지만, 그래도 먼저 해산물 요리를 받아 들고 먹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부드러운 메기요리, 감자에 훈제 연어와 새우가 사이드로 나왔고 버터와 치즈도 큼지막하게 나왔다. 보기에도 맛있었지만 먹기에는 훨씬 더 맛있었다. 훈제 연어와 새우는 한 입 물고 나니 육즙이 혀를 적셨고 좋은 음식점 못지 않게 씹는 맛이 좋았다. 메기는 크기도 제법 컸지만 전혀 뻑뻑하지 않고 많이 씹지 않아도 부드럽게 입 안에서 녹았다.

이상이 내가 아스타나 항공과 사랑에 빠진 순간이다. 첫째, 맥주를 500cc 캔으로 준다는 것. 둘째, 정말 말도 안되게 맛있는 기내식을 준다는 것. 이상 두 가지가 가장 핵심적인 이유이다.

물론, 자리가 넓고 음료를 여러 번 주고, 이착륙이 부드럽고, 대기 시간이 짧다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사랑에 빠지는 데는 많은 이유가 필요하지는 않다.

즐겁고 행복한, 정말 매우 사랑스러운 비행을 마치고 이스탄불에 도착한 시간은 현지시간으로 8시 40분경이었다. 잽싸게 짐을 찾고 나오는 길에 면세점을 기웃거렸지만 고프로는 보이지 않아 포기하고 밖으로 나왔다. 처음 오는 터키지만, ‘꽃보다 누나’에서 본 장면이 있어 카페라던가 김희애와 이승기가 합작으로 구한 렌터카 업체 등이 보여 반가웠다. 하지만 나와는 관련 없는 업체인지라 인터넷에서 본 대로 지하로 내려가 메트로를 탔다.

 

환승에 유리하다는 카르트(Kart)를 하나 사서 메트로에 오르니 곧 출발했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피로를 풀어 주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터키에는 관광객이 많아 보였다. 제이틴버누역에 금방 도착했길래, 카바타스방향 트램을 육교아래에서 집어 타고 술탄 아흐멧 역으로 왔다.

오늘은 첫 날이고 늦은 밤이라 적당한 가격이면 빨리 들어가 씻고 자는 것이 계획이었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 유명하다는 아고라 G.H.에 가서 가격에 흠칫 놀라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숙박비를 알아보다 보니 도저히 엄두가 안 나는 가격인지라 결국 1시간 반 가량을 주변을 돌고 돌다 그나마 저렴한 메트로폴리스 게스트하우스로 일단 방을 잡았다.

도미토리 44TL라는 엄청난 가격이지만, 그나마 찾아 다닌 곳 중에서는 가장 싼 편이라 인도에서 터키로의 물가 적응이 절실했다. 싸다고 들었던 터키도 성수기가 되니 정말 만만치 않게 비싸구나하는 것을 느낀 밤이었다.

하지만 가장 싼 방이라도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고 침대 시트가 깨끗하며 화장실에서는 뜨거운 물이 철철 나오는 것이 정말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