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터키]

[D+167/2014.6.2/사프란볼루/터키] 유럽의 미얀마, 사람들이 너무 좋은 터키

빈둥멀뚱 2014. 6. 3. 04:36

조식(kahvalti)시간이 7시에서 9시 사이여서, 어젯밤 저녁에 7시 아침을 먹고 아침산책을 하려고 마음먹었는데, 7시 알람은 꺼버린지 오래, 8시 45분에 일어나 겨우겨우 막차로 아침을 먹었다. 호텔 분위기처럼 아침식사도 정갈하고 깔끔하였다. 빵들과 직접 만든듯한 4가지 종류의 잼과 4가지 종류의 올리브 장아찌, 3가지 종류의 치즈, 토마토까지 과일이 없는 게 무척 아쉬웠지만, 맛있는 아침식사를 마쳤다. 식사를 마치고는 좀 쉬면서 사진이랑 블로그 글을 좀 쓰고 나니 어느덧 12시가 가까워 왔다.

차르시(carsi)쪽에 오래된 호텔이 있는데, 그 건물 안에 수영장 같은 indoor pool이 있고 수영 용도가 아닌 온도를 낮추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내용을 책에서 봤는데, 영화 ‘아저씨’에서나 다른 이탈리아나 터키가 나오는 다큐멘터리에서 본 기억이 나서 꼭 두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에 어제 밤부터 오늘은 이곳에 가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Havuzlu Asmazlar Konagi라는 이름의 장소였는데, 론니에도 정확한 장소가 나와 있지 않았고 구글 지도 상에도 없어서 여기 저기 앉아서 쉬고 계시는 동네 분들에게 더듬더듬 물으며 찾아 갔다. 다행히 억세고 못난 발음에도 찰떡같이 알아들어 주시는 어르신들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찾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찾아간 이 호텔은 내가 상상한 곳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물길이 있어 크고 넓은 홀 안에서 직사각형의 수영장 같은 곳으로 물이 졸졸졸 흘러 들어갈 것으로 상상했는데,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작은 공간에서 정사각형 모양의 풀장으로 수도꼭지에서 물이 흘러 나오고 있었고 바닥 공간에 물이 고여 있는 것이 아닌 높이 형성된 탕 안 쪽에 물이 있었다. 적잖아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찾아간 김에 차나 한잔 마시기로 하고는 잠시 앉아서 이야기를 하다가 나왔다. 기대하고 찾아간 실내 풀장 보다 밖의 정원에 가꾸어 놓은 장미 꽃들이 훨씬 더 볼만 했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개구쟁이 꼬마 녀석들. 온갖 손 동작을 하면서 신나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길래 한 장 찍어줬더니 돈을 요구했다. 없다고 했더니 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쿨하게 돌아서며 잘 가라고 인사를 해주었다.

터덜터덜 걸어서 다시 숙소로 돌아오다가 길 가에서 배낭을 내려 놓고 열심히 전화 중이던 한 여인을 만났다. 한 눈에 한국 사람 같아 말을 걸어 보니 미리 숙소를 예약하고 왔는데, 제대로 예약이 안되어 있어 곤란을 겪고 있던 자연씨였다. 알아본 숙소가 내가 머무는 숙소보다는 비싼 것 같기에, 숙소 명함을 주면서 위치를 알려주고는 사프란 버스 사무실에 들려 내일 앙카라(Ankara)행 버스를 예매했다. 그리고는 에페스 맥주 두 병(9.5TL)과 숯불구이 통닭 한 마리(8TL)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아침에 비가 왔었지만 한 낮의 태양에 깔끔히 마른 야외 소파에 앉아 치맥을 먹었다. 전혀 짜지 않고 살도 토실토실한 맛있게 구워진 통닭이었다. 즐거워 하면서 맛있게 먹고 있으니 자연씨도 내 숙소에 방을 잡고 내려왔다. 같이 앉아서 도란도란 여행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잠시 각자 방에서 쉬었다.

무한 도전 ‘선택 2014’를 보면서 이번에 6.4 지방선거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사뭇 아쉬웠다. 한 표, 한 표가 정말 소중한데.. 모두들 꼭 투표하세요!

저녁은 역시 어제 맛있어 보이던 집에 자연씨와 함께 가서 다양한 재료를 감자에 넣은 요리인 꿈피르(kumpir), 양고기 케밥과 가지 양고기 케밥을 시켜 아이란과 함께 먹었다. 자연씨는 4개월째 여행 중이었는데, 동생과 같이 인도, 이란 등 여러 나라를 거쳐 터키에 왔다고 했다. 잠시 동생은 서유럽쪽을 여행하다가 부모님까지 다 같이 이스탄불에서 온 가족이 모여 함께 터키와 그리스 여행을 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온 가족이 함께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 참 부러웠고 멋졌다.

같이 배부르고 맛있게 먹었지만 어제 먹은 집에 비해 공짜 샐러드나 빵이 나오지 않아 조금은 아쉬웠다(총 55TL). 식당에서 맥주를 팔지 않아 다시금 한 캔씩 맥주를 사 들고 울루 자미(ulu cami)앞의 벤치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는데, 주변의 마을 사람들이 우리에게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주변에 머물며 계속 말을 걸었다. 상당히 이쁜 아이와 통통한 아주머니, 수염을 멋지게 기른 총포상 주인과 터키 축구 우승팀 유니폼을 입은 살리까지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 이름을 소개하고 표정과 손짓만으로 한참을 떠들었다. 우리를 많이 신기해했고, 같이 사진을 찍으려고 서로들 핸드폰을 들이 밀었다. 멋쟁이 수염의 가죽잠바 총포상 아저씨는 우리에게 사프란 볼루의 전망대 사진을 보여주며 차로 우리를 데려다 주고 데려 오겠다는 호의를 표시했다. 심지어 그는 우리가 불안해 할까 봐 아내와 딸까지 같이 데려가겠다고 표현 했고, 그에게 어떠한 불손한 의도도 없음을 느낄 수 있었지만, 늦은 시간에 폐를 끼치지 싶지 않아 감사함만을 표현하고 거절했다.

어제와 오늘 느낀 사프란 볼루 사람들은 아이에서 어른까지 정말 친절하고 표정들이 밝다.  점점 갈수록 터키가 좋아진다. 지금까지 가장 좋은 미얀마를 제치고 어쩌면 터키가 가장 좋은 나라가 될 수도 있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