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터키]

[D+169/2014.6.4/괴레메/터키] 830m 상공에서 내려다 본 카파도키아

빈둥멀뚱 2014. 6. 5. 04:32

 4시 30분 픽업이 예정되었던 상황에서 2분전 쯤 모든 준비를 마쳤다. 태현이가 5겹을 껴 입고 갔다면서 제법 많이 춥다고 하길래, 나도 철저히 대비를 하고 기다리니 약속된 시간에 정확히 차가 도착해서 에어 카파도키아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실로 많은 사람들이 이미 와 있었고 커피와 빵으로 간단히 간식을 먹은 후 기구 이륙 장소로 갔다. 가는 차의 창 밖으로는 이미 많은 기구들에 뜨거운 공기가 채워지며 팽팽히 부풀어 오른 기구들이 하늘을 향해 날아 오를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내가 탈 기구는 조종석을 제외하고 4칸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한 칸에 6명씩 총 24명에 조종사 2명까지 총 26명 타는 것이었다. 난는 운 좋게 바깥 쪽 자리를 잡게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다른 기구들을 바라 보면서 출발을 기다렸다. 이윽고 기구는 따뜻한 온기를 나에게까지 전해주며 서서히 하늘로 날아 올랐다. 빠르다는 느낌은 없었고 바람이 세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전혀 바람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는 편이 좀 더 맞을 것 같다.

레드 밸리쪽에 밝아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을 뜨는 느낌은 애니메이션 영화 ‘업’에서 풍선을 달고 하늘로 날아 오르는 집처럼 아기자기 하지는 않았지만 꽤나 벅찬 느낌이었다. 조금씩 괴레메와 전체 카파도키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빨갛고 하얀 혹은 누런 바위들이 조금씩 떠오르는 태양 그리고 빨간 하늘과 잘 어울리며 감동적인 장면을 선사했다. 너무 많은 기구들이 한 곳에서 비행하다 보니 기구끼리 부딪혀 사고가 난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많은 수의 기구들이 불만족스러웠지만, 각자의 높이에서 떠오르는 기구들의 모습은 압도적인 자연환경과 더불어 또 하나의 그림 같은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이 곳은 예전에 용암이 흐른 곳이라 여러 지형이나 암석들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형성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용암이 흐른 자국이 여기 저기 선명하게 남아 있어 분명하게 알아 볼 수 있었다.

잠시 낮은 고도로 날아가며 혹은 한 바퀴를 돌려 주변의 아니 아주 멀리까지의 풍경을 선사하던 조종사는 우리를 러브 밸리 안으로 데려갔다. 곧게 솟은 여러 암석 기둥들이 남자의 성기를 닮아있는데 이 때문에 이름이 러브 밸리 인 듯 했다. 이 곳에서는 다른 기구들과 너무 가까이 붙는 것 같아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다행히 별 문제 없이 러브 밸리를 구경하고는 마지막으로 높이 높이 솟아 올랐다. 조종사의 말로는 이 곳에서의 제한 고도는 800m 정도라고 했는데, 초당 3m라는 꽤 빠른 속도로 올라 800m 이상에 도착을 했다.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인지, 패러글라이딩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고 조금은 TV화면으로 보는 것 같은 비현실성이 있었다.

다른 기구들을 아래로 내려다 보며 멀리 보이는 산 너머의 풍경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것은 정말 새롭고 황홀한 경험이었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몇 일씩 비행을 못하기도 해서 기구를 타고 싶어도 못 타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오자마자 아무 문제 없이 기구를 타게 되어 정말 행운이다.

한껏 떠오른 태양 빛을 맞으며 우리는 서서히 다시 땅으로 돌아 왔고, 착륙 자세를 취하며 안전하게 도착했다. 우리가 내려오자 첫 비행을 축하하며 수료증을 나눠주기도 했고, 나름의 샴페인 잔을 준비해서 모두에게 나눠주며 즐거움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꽤나 잘 짜여진 투어라는 생각을 했다.

숙소에 데려다 줘서 돌아온 건 채 7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잠깐 앉아서 여전히 하늘을 날고 있는 기구들을 구경하며 아침 햇살을 즐기다가 8시에 아침 식사를 했다. 이번에 잡은 Isthar cave pension은 가격도 저렴하지만(도미토리 1인 17TL) 오토가르에서 거리도 가까워 부담이 없고 무엇보다 나름 식사하는 공간이나 쉬는 공간을 잘 해 놓아서 정말 만족스럽다.

소화도 시킬 겸해서 슬슬 걸어서 괴레메를 둘러 싸고 있는 바위 산 중 하나에 올라 마을을 다시 한 번 내려다 보았다가 숙소로 돌아와 자연씨가 준 책자를 보며 가고 싶은 곳을 골랐다. 일행이 아바노스(Avanos)를 갔다가 젤베 밸리를 둘러 보고 다시 돌아오는 계획을 세웠길래, 1시간마다 있다는 돌무쉬(dolmus)를 타러 오토가르 앞 큰 길가로 갔다.

매 시 15분마다 있다는 돌무쉬는 한 5분 더 기다리자 도착했고 돌무쉬에 올라 20분 정도를 달려 갔다(1인 3TL). 괴레메에서 먹는 항아리 케밥은 제대로 된 맛이 아니고 아바노스의 항아리 케밥이 진짜라고 태현이가 얘기를 해 주어서 우리도 일단 점심을 먹기 위해 제대로 된 식당을 찾았다. 여기 저기를 걸어 다니던 중 한 도자기 가게의 친절한 아저씨가 자신도 친구들과 만나면 늘 간다는 맛 집이라면서 타파나 식당(Tafana restaurant)를 추천해 주셨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식당을 찾아 가던 길에 손주를 산책시켜 주던 할머니의 모습이 너무 예뻐 보여서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요새는 어딜 가나 나이 드신 분들이 무언가를 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인다.

찾아간 타파나 식당은 한 명의 손님도 없었지만,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제대로 된 식당이라는 느낌을 단 번에 받았고 무언가 모를 기대감에 휩싸였다. 그리곤 kiremit sis(15TL)와 testi kebap(항아리 케밥, 23TL)을 시켰다.

먼저 나온 빵은 역시나 맛있었고 이어 나온 키레밑 시스도 내가 터키에서 지금까지 먹었던 양고기 중에 가장 맛이 좋았다. 하이라이트였던 항아리 케밥이 가장 마지막에 나왔는데, 시간이 걸린 것으로 봐서는 다른 곳처럼 미리 만들어 두었다가 따뜻하게 데워만 주는 것이 아님이 분명했다. 항아리 케밥의 양념은 키레밑 시스와 같은 것이었지만 조리법이 달라서인지 분명한 차이가 느껴졌고 기름에 볶지도 증기에 찌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오묘한 조리법이 맛에 차이를 분명히 했다. 한 마디로 맛이 정말 좋았다. 한 없이 더 가져다 주는 빵과 보리밥으로 인해 이미 배는 가득 찼지만 나의 감동을 한층 더 해 주었던 것은 마지막에 나온 후식이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다양한 과일을 그것도 정말 잘 익은 맛있는 과일을 정갈히 담아주어 다시 한번 터키와, 그 속의 사람들 그리고 터키의 음식과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심히 만족해져서는 좋은 식당을 추천해 주신 아저씨께 돌아가 감사를 표현하고 여러 작품을 구경했다. 직접 다 만들었다고 한 아저씨 가게에는 정말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도자기 작품들이 많았고, 몇몇 것들은 갖고 싶었지만 남은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훌륭한 작품을 보여 준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하고는 다음을 기약하고 나와 마을을 구경했다. 터키 전통 아이스크림이 있길래, 하나 사서 그 쫀득쫀득한 맛에 빠지고 나니 일찍 일어난 여파로 잠이 몰려왔다. 결국 다시 숙소로 돌아와 잠시 눈을 붙였다.

출출해져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가 같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시는 노부부를 보게 되었는데, 예전에 혼자 여행할 때나 여럿이 같이 다닐 때나 언제 보아도 노부부 두 분이 멋지게 여행하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내 시선을 한결같이 사로 잡는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돌아봤는데, 예전 계획은 터키, 그리스를 거쳐 튀니지로 들어갔다가 이집트를 배타고 가려고 했으나, 그리스에서 직접 들어가는 배가 없는 것 같아 이탈리아를 거쳐 튀니지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최근 선거가 끝나고 이집트의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하며 여행자들에게 들리는 이야기도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아 안전하다고 하는 다합만을 비행기로 들어갈 것인지, 이집트 자체를 빼버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터키에 있는 외교부에서 시나이 반도에 관한 문자가 거의 매일 오는 상황이라 이집트를 배제하게 된다면 아프리카 동북부를 빼버리고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가 탄자니아에서 남아공까지 내려가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이집트 다합은 워낙 사람들이 좋아하고 예전부터 많이 들어왔던 장소라, 다이빙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제외하기에 정말 미련이 많이 남는 곳이다. 일단 터키를 도는 동안 고민을 많이 하면서 계속 예의주시해 봐야겠다.

저녁을 먹고는 터키 동부 쪽 버스표를 좀 알아보러 가다가 사프란 볼루에서 만났던 한국분들을 만나서 잠시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언어에 굉장히 해박한 아저씨 한 분과 각자 따로 여행을 온 예쁘고 성격 좋은 여자 두 분이었는데, 대화가 조금 편향되어 있긴 했지만, 나름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