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터키]

[D+165/2014.5.31/이스탄불, 사프란볼루/터키] 태현이와 만나다! 행복한 우연

빈둥멀뚱 2014. 6. 1. 05:04

어제 태현이의 도착 카톡을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연착으로 인해 새벽 1시가 넘어 공항에 와서 고생고생 끝에 숙소를 찾아 간 것 같았다. 당장 연락해서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피곤할 것 같아서 꾹 참고 아침 산책을 하며 태현이 숙소 위치를 확인하고는 다시 숙소로 돌아와 아침 식사 전까지 밀린 글을 좀 썼다. 어린 배낭여행자들이 많은 숙소라 그런지 아침 식사 시간이 다른 곳 보다 늦은 9시부터였다.

9시쯤 되니 엄청나게 많은 학생들이 붐볐는데 물어보니 네덜란드 대학에 다니는 건축학도들인데, 이스탄불로 단체 여행을 왔다고 했다. 우리는 대학 때 여행이라고 하면 도망 못 가는 술자리인 MT를 가서 밤새 게임을 하며 지저분하게 술 먹고 방하나를 개판으로 만든 다음에 쪽잠을 자다가 돌아오는 것이 보통인데, 이스탄불로 소풍 같은 여행을 온 모습을 보니 매우 좋아 보였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도 잠시, 이 먹보들이 내 아침까지 다 먹어 버릴까 봐 서둘러 줄을 서서 아침을 확보했다. 내 오른쪽 자리에는 도미토리 방을 같이 쓰고 계신 60-70대의 할아버지 한 분이 홀로 여행 오셔서 학생들 틈에 끼어 식사를 하고 계셨는데, 불편할 것임이 틀림 없는데도 저렴한 숙소를 찾아서 여행을 하신 모습이 매우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주변에 어린 학생들은 그 분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이 없어 동시에 조금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아침을 부지런히 먹고 짐을 싼 후, 부푼 가슴을 안고 태현이를 만나러 갔다. 마침내 만난 태현이를 반가운 마음에 덥석 끌어 안고는 서로 껄껄껄 웃었다. 정말 대단한 우연이었다. 사전 연락도 없이 내가 이스탄불에 온 2일 후에 이스탄불에 도착하고 5분 거리도 안 되는 곳에 숙소를 잡다니 놀라웠다. 예전에 제주도에 갔을 때도 우연히 제주도에 놀러 갔던 태현이와 연락이 됐었지만, 그때는 만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곰지 때도 그랬고, 타국에서 만나는 지인은 정말 몇십배는 반갑고 애틋하다.

줄 것이 없어서 아스타나 공항에서 받아서 먹을려고 쟁여 놓았던 카자흐스탄 맥주 하나를 건냈다. 태현이는 나에게 먹으려고 가져온 컵라면을 무려 3개나 주었다. 서로 흐뭇하게 눈빛을 주고 받다가 같이 식사를 하러 나섰다. 일단 걸어서 갈라타 타워를 거쳐 이집션 바자르를 구경하고 어제 우리가 지나가면서 맛 집으로 예상해 두었던 집에 들려 치즈 삐데와 소고기 삐데(pide, 터키식 피자)와 도마테슬리 케밥(토마토 케밥), 후식인 쿠네페(kunefe, 정체를 모르는 녹색 가루가 뿌려져 있는데, 달달한 맛으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치즈가 들어있어 부드럽다)를 먹었다. 여럿이 있으니 여러 음식을 골고루 먹어 볼 수 있어 역시 좋다. 태현이 친구들도 거의 태현이 같은 느낌이라 거의 태현이 셋이서 다니는 듯한 편안함을 받았다.

주말이라 그런지 제법 사람이 많았다. 좀 더 걸어서 환전을 하기 위해 그랜드 바자르를 들려 한 바퀴 돌아 보고는 다시 갈라타 다리로 돌아왔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다시 한번 에페스 맥주(10TL)와 고등어 케밥(5TL)를 먹으며 도란도란 이스탄불이나 루트, 터키의 근육질 여자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비행기를 타고 카파도키아에 간다기에 일정상 계속 함께 하기는 힘들 것 같아 카파도키아에서 한 번 더 만나기를 기약하고 아쉽지만 헤어졌다.

가는 길에 우연히 스쳐지나 가는데 사진을 요구한 귀여운 터키 소녀들.

 

나도 오늘 밤 버스로 사프란 볼루(safran bolu)로 넘어가기 위해 술탄 아흐멧으로 가서 모두가 싸다고 하는 그리고 우리도 좀 싼 것으로 확인한 뉴딜여행사를(볼룬 투어 99유로) 가려고 했지만, 화장실을 가려고 잠시 들렸던 아야 소피야 옆 동양 호텔에 붙은 하나로 여행사에서 값을 문의하니 가격이 거의 차이가 없고 워낙 친절하게 잘 설명해 주어서 카파도키아 볼룬 투어(100유로)와 그린 투어(100TL), 그리고 사프란 볼루행 버스 티켓(45TL)만 예매를 했다. 한국 말을 정말 잘하시는 터키 사장님이 친절하게 장사를 정말 잘 하시는 것 같다. 밤 11시 반 버스이지만 동양 호텔에서 픽업이 9시라 일단 숙소로 걸어와서 짐을 챙겨 나왔다.

토요일이라 탁심 광장에서 시위가 있을 것이라는 말을 태현이 통해서 들었지만 아침부터 정말 많은 정복 경찰들과 사복 경찰들이 나와 있었고, 오후가 되니 이스티크랄 거리를 거쳐 탁심으로 가는 사람들도 정말 많았다. 나는 짐을 메고 탁심에서 메트로를 타려고 했으나 왠지 그 쪽으로 가기가 무서워져서 반대로 걸어 내려가 트램을 타기로 했다.

트램 역에 도착했지만, 무슨 일인지 트램도 에미노뉴역까지 밖에 운행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다시 트램에서 내려 짐을 멘 채로 동양 호텔까지 걸어가기로 하고 가고 있었다. 제법 먼 길이었지만 이 곳에서 시위 행렬이 있어서 탄광 사건에 관련한 총리 반대 시위 인가 했더니, 이 쪽은 시리아 사태에 관련된 시위인 것 같았다. 크게 위험해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고 사람들이 줄지어 거리로 행진을 하는 바람에 트램이나 버스 등 모든 교통편이 일시적으로 다니지 않는 것 같았다.

힘겹게 걸어서 동양 호텔에 편히 앉아 방명록을 읽으며 버스를 기다리니 사람을 가득 태운 밴이와서 우리를 태워 주었다. 버스 터미널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아서 한 20분 정도 앉아 있으니 도착했다. 가보니 새롭게 티켓을 끊어 주었고 11시 쯤 버스에 올라 정확히 11시 반이 되자 버스가 출발했다. 인도의 지연 출발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이 것마저도 즐겁고 신이 났다. 좌석 앞 스크린에서 티비가 나오는 터키 벤츠 버스에 앉아 비행기처럼 나눠주는 쿠키와 주스를 받아 먹고는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