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터키]

[D+164/2014.5.30/이스탄불/터키] 이스탄불의 남산, 참르자 언덕

빈둥멀뚱 2014. 5. 31. 05:49

아침에 일어나서 카톡을 확인해 보다가 정말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새벽에 카톡이 잔뜩 와 있길래 봤는데, 태현이가 2주간 터키에 온다고 공항에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숙소도 우리가 현재 머물고 있는 탁심으로 온다고 했다. 정말 기막힌 우연이고 인연이었다. 서로 말 한마디 없이 상의 한번 한적 없었는데, 우리가 터키에 온지 2일 만에 태현이가 터키 여행을 준비하고 터키에 오다니!

곰지 이후로 지인을 만난 적이 없었고 곰지도 너무 짧게 밖에 만나지 못해서 정말 아쉬웠는데, 친한 동생을 또 타지에서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하니 너무나도 즐거웠다. 일단 서로 연락이 되지는 않지만 연락을 좀 해 놓고는 아침 산책 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어제 걸어다니면서 봤던 허름한 동네 빵집에 가서 서로 다른 4종류의 빵과 치즈와 버터를 사서는(총 6TL) 거리의 찻집에 앉아 짜이(cay)를 한잔 시켜서 아침으로 먹었다. 키 작고 밝은 표정을 가진 주인 아저씨는 거리 테이블 주위에 담쟁이 넝쿨을 키우는걸 매우 즐거워 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빵을 먹는 중에도 옆에서 의자를 놓고 그 위에 올라가 노끈으로 담쟁이 넝쿨이 타고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면서 연신 행복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처음에 빵을 먹을 때도 혹시 싫어하실 까봐 먹어도 괜찮은지 물었지만 전혀 상관 없다는 듯이 손을 휘적휘적하며 어서 먹으라고 하셨다. 담쟁이 아저씨의 표정이 정말 밝고 맑아서 시원한 아침 공기와 바삐 출근하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의 마음도 밝아졌고, 짜이도 연달아 두 잔이나 먹었다. 인도의 짜이는 밀크티인데, 반해 터키의 짜이는 블랙티인 점이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빵을 다 먹고도 한 동안 앉아서 동네 사람들과 출근하는 사람들, 등교하는 학생들을 구경했는데, 어제 밤에 비가 좀 와서 인지, 아침 기온이 어제에 비해 많이 내려가서 조금은 쌀쌀하면서 시원했다. 주변에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 거리면서 우리 옆의 나무에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가 하며 혼자 노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아직 사람 손을 타지 않아서 주변에 사람이 있던 말던 무엇을 먹던 말던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더욱 귀여웠다.

한잔당 1TL인 짜이 값을 계산하고 숙소로 돌아와 태현이의 연락을 보고는 1박을 더 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부랴부랴 숙소를 알아봤더니 5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아침도 주고 차도 언제나 마실 수 있는 나쁘지 않은 가격대의 숙소가 있었다. Mystic simurgh G.H.였는데, 가까워서 바로 가서 구경하니 EXISTANBUL보다 가격은 조금 더 비쌌지만 시설면에서는 더 좋고 깨끗했다.

짐을 싸서 숙소를 옮기고는 밀린 블로그를 조금 올리다가 근처에 있다는 홍합밥을 먹으러 나섰다. 2시가 조금 안된 시간 이었는데, 골목을 나가는 길의 왠 식당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급 식당도 아니었기에 이런 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홍합밥은 저녁에나 먹기로 하고 바로 줄을 섰다. 이스탄불에서 많이 보던 예전 고속도로 휴게소 형식의 밥집이었다. 쟁반을 놓고 원하는 것을 하나씩 집어서 고른 만큼 계산하고 먹으면 되는 매우 익숙한 형식이었다. 나도 느낌이 오는 요리를 골라 담고는 계산을 했다(12TL). 타북 예멕레르키(Tavuk yemeklerki), 타북 시스(Tavuk sis)로 추정되는 요리였는데,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다. 두 가지는 진하거나 좀 여린 닭볶음탕 같은 맛이었고 크림소스라고 생각하고 집어온 음식은 표현하기 쉽지 않은 요거트의 맛이 났다. 뭔가 복잡미묘하면서 알고 있는 맛들의 조화가 있었는데 무엇인지 알기가 쉽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전체적으로는 맛있고 싼 편이었다. 음식점 손님은 정말 괜히 많은 것이 아니다.

 

배를 잔뜩 채우고는 슬슬 걸어서 이집션 바자르(eygptian bazar)쪽을 향했다. 가는 길에 갈라타 타워를 지나가며 잠깐 보기는 했지만, 굳이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걸어서 갈라타 다리를 건너 마침내 도착한 이집션 바자르는 전형적인 우리의 시골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엄청나게 많은 현지인들이 물건을 사러 왔고 도매로 팔기 위해 많은 기성품들이 싸인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파는 방식이나 물건들은 좀 달랐지만 느낌은 이미 종로 5가 광장시장이나 동대문 시장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중간 중간 사람들이 가득 들어찬 식당들이 보이고 음식도 정말 맛있어 보여 호기심에 몸이 근질근질했지만, 배가 불러 차마 들어가지는 못했다.

걸다가 시장 길 한 가운데에서 츄러스 비슷한 것을 팔고 있길래 한 번 사먹어 보았는데(1.5TL), 이름은 레제프 우스타(recep usta)인 듯 하다. 당연히 츄러스 맛이 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 입맛에는 맛동산 같은 맛으로, 지인 입에는 약과 같은 맛으로 각자 이야기 했다. 결론적으로는 겉은 맛동산 맛, 안은 약과 맛인 것으로 내려졌다. 시장을 둘러 보는 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잠시 비를 피하다가 오래 올 것 같아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다리 아래로 건너는 도중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져서 다리 아래에서 바다에 떨어지는 비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어제 석양 본 것이 생각나며 나름대로 또 다른 낭만이 있었다.

오래 올 것 같던 비는 바람에 비구름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다시 맑아져서 전망이 좋다는 참르자 언덕(camlica)언덕에 가 보기로 했다. 위스퀴다르(uskudar) 선착장에 도착해서 맞은 편에 보이는 버스 정류장에서 15c번 버스를 무사히 탔으나 내려야 한다는 부육 참르자(buyuk camlica)가 보이지 않아 옆에 아저씨한테 물어서 기점 비슷한 곳에서 내렸다. 어느새 비 구름은 멀리 사라지고 하늘에는 다시 파란 하늘과 흰구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교 하는 아이들이 집에 가는 지 언덕을 오르고 있었는데, 우리를 보면서 신기한지 자꾸 뒤돌아 보고 웃었다. 먼저 ‘하이’하며 인사하길래, ‘하이’도 한번 해주고, ‘메르하바’했더니 같이 ‘메르하바(안녕하세요)’하였다.

 

한 15분 정도 걸어 올라가다 보니 공원이 나왔고 이 곳이 정상인 것 같았다. 듣던 대로 이스탄불의 구시가지, 유럽지역, 아시아 지역이 고루 내려다 보였고 이 들을 잇는 대교도 눈에 들어 왔다. 이스탄불은 바닷가라 대도시임에도 시야가 좋은 것인지, 산이 주변에 없어서 그런 것인지 정말 멀리까지 잘 보였는데, 특히 하늘의 각층으로, 갖은 각색의 모양으로, 각각의 다른 속도로 떠 다니는 구름이 정말 멋있었다. 비 와서 안 오려던 곳이었는데, 의외로 전망이 진짜 좋아서 연신 오길 잘했다며 좋아했다.

주변을 좀 걸으면서 구경했는데, 걷다 보니 주변에 길을 만들어 놓은 모습이나 시설물들, 전망이나 역할 등이 서울의 남산과 정말 유사한 점이 많았다. 정상의 카페에 앉아서 잠시 사진도 찍고 해 지는 것을 구경했지만, 6시 반 정도였음에도 해는 여전히 높이 떠 있었다. 터키는 해가 정말 긴 나라인 것 같다.

돌아갈 때는 위스퀴다르 선착장까지 약 5.5km정도를 걸어가기로 했다. 중간에 넓은 도로를 건널 때 육교를 여러 번 거쳐가야 하긴 했지만, 비교적 전반적인 내리막 길로 걸어가기에는 무난했다. 하지만 어제 많이 걷고 오늘도 여기저기를 다 걸어 다닌 여파로 선착장에 다 와서는 제법 힘들었다. 하지만 오면서 관광객이 거의 없는 현지인들의 집들을 구경하면서 온 것은 꽤 좋았다.

어제 하도 여기 저기 돌아다닌 탓에 충전했던 돈이 떨어져 선착장에서 다시 교통 카드인 istanbul kart를 5TL 더 충전해서는 카바타쉬(kabatas)행 vapur(로컬 페리)를 타고 유럽지역으로 건너와 탁심에 돌아왔다.

저녁으로는 점심에 먹기로 했던 홍합밥을 먹으러 이스티크랄 거리에 있는 해산물 거리로 갔다. 탁심광장에서 이스티크랄 거리를 따라 내려오다가 길이 좀 꺾이는 부분에 있는 맥도날드 바로 직전 오른쪽 골목이다. 홍합 튀김(4꼬치, 8TL), 홍합 밥(5개 4TL), 양고기 곱창(10TL)를 시켜서 에페스 맥주와 함께 먹었는데, 홍합 요리들은 조금은 짭짤하고 조금은 느끼한 것이 맥주 안주로는 제격이었다. 양고기 곱창도 냄새가 많이 나지 않아 먹을 만 했는데, 홍대에서 먹던 양꼬치 구이를 생각나게 하는 맛이었다. 하지만 한국보다는 맛이 덜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하품을 하면서 숙소에 들어와 씻으니 정말 너무 졸렸다. 태현이가 자정이 넘어 도착한다기에 12시 반 정도까지 연락을 기다리며 버텼지만 잠이 쏟아져 잠들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