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터키]

[D+163/2014.5.29/이스탄불/터키]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대도시, 이스탄불!

빈둥멀뚱 2014. 5. 30. 05:45

 

 

다시금 열심히 운동하고 부지런히 돌아보자는 마음에 정말 오랜만에 도미토리에서 운스를 했다. 어제 잠에 든 시간이 12시 반 정도였는데, 그 이후에 들어온 사람이 있는지 한 남자가 구석에서 자고 있었는데 신경 쓰이지 않게 조용히 숨을 고르며 운동을 하고는 아침 산책을 나섰다. 어제 늦게 도착해서 피곤했지만 술탄 아흐멧(sultan ahmet)의 거리는 맑고 화창했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이미 부지런한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은 블루 모스크를 구경하고 나오고 있었고, 따사로운 햇볕이 비치는 잔디 밭 위로 스프링 쿨러에서 뿜어대는 물 줄기가 시원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부분적으로는 작은 무지개들도 보였다.

 

 

조금 걷다가 가고 싶은 예레바탄 지하 궁전(Yerebatan Caddesi)의 위치만 확인하고 8시에 시작하는 아침 조식을 먹으러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도착해 아침을 먹으러 옥상으로 올라갔다. 어제 늦은 밤 길을 헤매며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느라 몰랐지만, 어제 잡은 숙소 옥상에서는 보스포루스(Bosphorus)해협이 잘 보였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바닷물과 하늘을 날아 다니는 갈매기들이 이 곳이 바닷가임을 알게 해줬다. 여행 중 처음으로 만나는 항구 도시의 전경은 죽여줬고, 바람은 시원했다.

생각보다 잘 나오는 아침 뷔페 식단을 잔뜩 쌓아 와서 먹으면서 맛과 신선함에 다시 한 번 감탄을 했다. 생각보다 비싼 숙소였지만, 진지하고 심각하게 더 있을지 고민을 했다.  음식을 더 가져다 먹으며 만족감에 연신 감탄사를 내 뱉었고, 어제 기내에서 오랜만에 먹은 제대로 된 커피에 감탄해서 다시 한번 달라고 해서 두 번을 먹었던 행위가 터키에서는 의미 없는 것임을 느꼈다.

아침에 나온 과일, 빵, 버터, 치즈, 요거트, 커피 하나하나가 정말 너무나도 맛있었던 것이다. 유럽이란 이런 것인가 싶었다. 만족감과 포만감으로 잔뜩 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내려와서 짐을 쌌는데, 데스크에 문의해보니 이미 오늘 방의 예약이 끝난 상태라 미련 없이 짐을 맡기고는 숙소를 나왔다.

먼저 블루 모스크(술탄 아흐멧 자미)를 보러 갔다. 역시 ‘꽃보다 누나’에서 한번 나왔던 곳이라 익숙했는데, 내부로 들어가니 저절로 ‘우와’소리가 나왔다. 보통 밖에서 보는 것보다 안에 들어오면 내부 공간이 작아 보이는 게 일반적인데, 이 곳은 밖에서도 어마어마하게 컸는데, 안의 공간도 정말 컸다. 기도를 하는 공간을 좌우앞뒤상하로 엄청나게 넓게 만들어서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그러나 이 놀라움을 내 카메라로 담기에는 역시나 역부족이었다. 우리 두 눈에 충분히 담고서는 밖으로 나와서 아야 소피아를 향해 걸어갔다. 거의 비슷한 모양이었지만 건물 외벽이 조금 달라 보였는데, 입장권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아무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렸다. 블루모스크를 본 것과 티비에서 본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고는 예레바탄 지하 궁전을 향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전 학생증을 내밀며 학생 할인이 되냐고 물었지만, 할인은 전혀 없었다. 결국, 입장료 10TL(터키 리라)를 온전히 다 내고야 지하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역시 tv에서 한번 본 곳이라 익숙하긴 했지만, 7천명의 노예가 10만 톤의 물을 저장하기 위해 쉴새 없이 땅을 파고 336개의 기둥을 세운 지하 공간에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에 주저 없이 선택했다. 날은 제법 더웠지만, 지하라 들어가자 마자 시원한 공기가 나를 기분 좋게 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주황색 불빛이 기둥을 아래에서 비추는 이 공간에서도 역시 처음부터 감탄사가 나왔다. 생각보다 상당히 넓었고 저장되어 있는 물은 물고기가 살고 있고 바닥이 다 보일 정도로 깨끗했으며 음악과 불빛의 조화가 정말 아름다웠다. 또한, 웅장한 건축물이나 구조물들을 볼 때 마다 늘 드는 생각도 나와 함께했다. ‘옛날에 태어나지 않기를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

예전에 태어났으면 정말 갖은 개고생을 다 하면서 살았을 거란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한가롭게 걸으며 시원함과 경이로움을 같이 만끽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스탄불 유적지의 핵심 지역이다 보니 단체 관광객들이 많았다. 유럽, 일본, 한국 단체 관광객들이 여기 저기에 모여 서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었는데, 우리도 지나가다 뭐 좀 얻어 들을까 해서 한국인 단체 관광객 옆에 서 있었다. 하지만 역시 스쳐 지나가는 별 관심 없는 이야기일 뿐 머리 속에 남거나 호기심이 생기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

지하 궁전을 나와 박물관에 관심이 없는 우리는 주변 박물관에 시선 한번 주지 않은 채, 시장 구경을 하기 위해 그랜드 바자(grand bazar)쪽으로 걸어갔다.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라서 30분이 채 안 걸린 것 같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본 것처럼 이 곳은 일반 서민들이 장을 보는 그런 시장은 아니었다. 보석상들이 대부분이었고 번쩍 번쩍 하는 물건들을 많이 전시하고 팔고 있었다.

이 곳 환율이 좋다고 해서 관심 있게 살펴 봤는데, 후에 다른 곳에서 본 환율과 비교하면 역시나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둘러 보다가 네팔 여행 중 알이 깨져 버렸던 싸구려 선글라스 이 후에 선글라스 없이 계속 다녀서 하나 장만해 보기로 하고 가격을 물었다. 아무래도 인도보다는 훨씬 비쌀 것 같아 (길거리 100루피, 뉴 마날리 250루피), 좀 긴장하면서 물었더니 처음에 40TL부르던 것이 점점 내려가서 20TL까지 내려갔다. 얘들도 2배 이상 부풀려서 부르는구나 라고 생각만 하고 큰길로 나오다가 다시 길거리에서 파는 아저씨에게 물었더니 처음부터 20TL(약 만원)을 불렀다. 순간 정직한 터키 아저씨를 만났구나 싶어서 이것저것 써보다가 20TL과 25TL 선글라스 두 개를 40TL에 달라고 해서 구입했다. 아저씨 눈이 착해 보이고 정직해 보이는 얼굴 표정으로 매우 친절하게 대해 주시길래 더 크게 흥정하지도 않았다.

구입한 선글라스도 인도에서 본 것에 비해 품질이 훨씬 좋아 보여서 꽤나 만족했다. 물론 인도에서 보다 훨씬 비싸긴 했지만 유럽이니까 비싸겠지 생각만 했다. 하지만 후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니 10TL, 심지어 5TL에 판매하는 선글라스까지 목격했다. 볼 때마다 입에 침이 마르고 숨이 턱턱 막혔지만, 아껴서 오래 쓰자는 쓰디쓴 결심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역시 정확한 물가를 모를 때, 뭔가를 사는 것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카드로 ATM에서 돈을 찾는 것의 환율이 그다지 나쁘지 않아서 달러 환전은 안 하기로 하고 숙소를 옮기기 위해 트램을 타고 카바타쉬(kabatas)역으로 가서 슬슬 걸어서 탁심(Taksim)으로 올라갔다.

탁심광장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카바타쉬에서 걸어가는 길이 계속되는 오르막인데, 중간에 낙산 공원에 있는 계단처럼 예쁘게 색을 칠한 계단이 많이 있었다. 

탁심 광장과 이스탄불의 명동 거리라고 불리는 탁심의 이스티크랄 거리를 구경하다가 찾아간 ex istanbul G.H.는 냄새가 조금 나긴 했지만 주인 아저씨가 정말 말도 안되게 친절하고 침대도 깨끗해 보여 이 곳으로 숙소를 옮기기로 했다(6인실 도미토리 20TL).

짐을 가지러 돌아가는 길에 배가 고파져서 지나가다가 장인 정신이 매우 투철해 보이는 흰머리 아저씨 가게로 들어가서 추천해 주는 양고기 케밥(7TL)과 미트볼 케밥(7TL)을 시켰다. 종업원이 서비스로 유명한 홍합밥과 한 개씩 직접 먹여 줬는데(5개 4TL), 살짝 느끼하고 짭짤하기는 했지만 새로운 맛이 제법 괜찮았다. 미트볼 케밥 역시 양고기 미트볼이었는데, 누린내가 심하지 않고 맛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처음 맛보는 터키의 빵이 정말 맛있었다. 베트남에서도 빵이 정말 맛있었는데, 좀 더 업그레이드 된 느낌이었다.

트램을 타러 걸어 내려가는 길에 자몽과 오렌지를 짜서 아무것도 섞지 않고 쥬스를 만들어 파는 멋쟁이 콧수염 아저씨가 계시길래 하나 사먹어 보았다. 정말 과일 외에는 아무 것도 섞지 않기 때문에 한 컵을 만들기 위해서 생각보다 많은 과일이 들어갔다. 저 많은 양을 1TL에 팔다니 터키는 과일이 정말 싼 것 같다.

짐을 새 숙소에 옮겨 놓고 카메라를 고치러 가니 어느새 시간은 5시 반이었다. 하지만 전혀 출출하지 않길래, 배를 한 번 타 보기로 하고 걸어가다가 막 출발하려는 배가 있길래 무작정 올랐다. 도착한 곳은 아시아 지역의 kadikoy 선착장이었다.

그대로 타고 쭉 돌아볼까 하다가 배를 타고 가면서 꽤 근사해 보였던 건물인 하이다르파사역(haydarpasa gari)에 걸어가 보기로 했다. 조금 돌아가야 해서 약 15분 정도 걸었는데, 이곳은 예전 아시아 횡단 열차의 출발역이라고 한다. 역사 내에도 추가 비용 없이 들어가 볼 수 있었는데, 스테인레스로 된 유리로 햇빛이 들어와 성당 안에 들어온 것처럼 예뻤고 매표소의 형태가 옛날 영화에서 보던 그대로라 정말 신기했다. 마치 시간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은 거의 없이 한적한 역사 안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데, 네다섯명의 터키 청소년들이 진한 애정을 과시하며 터키의 개방적인 표현 양식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여기까지 구경한 난 꽤 피곤해졌고 배도 많이 고팠다. 배를 타고 다시 유럽 지역으로 돌아와서는 갈라타 다리 아래서 자리를 잡고 낚시줄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물고기를 잡는 것을 구경하며 맥주와 고등어 케밥을 시켰다.

그리고는 석양이 지기를 기다렸지만, 해가 긴 터키는 해가 쉽사리 지지 않았다. 한 동안 여유 있게 날아가는 비행기와 갈매기, 휘날리는 낚싯줄과 퍼덕이는 물고기, 바쁘게 여기 저기로 옮겨 다니는 여객선들을 구경하며 에페스(efes)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곧 고등어 케밥이 나왔는데, 빵 안에 양상추를 비롯한 야채 조금과 고등어 반쪽이 들어 있는 것이 전부였다. 이 집이 잘 하는 집이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먹어 본 고등어 케밥은 기대 이하였다. 조금 건강한 맛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밥에 얹어서 국물과 함께 먹어야 할 고등어구이를 빵에 넣고 먹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좋아하고 칭찬하는 것을 보면 나중에 다시 한 번 시도를 해 봐야겠다. 시원한 에페스 맥주는 너무도 맛있었고 의자는 푹신하고 편안했으며 사람들은 한가로워 보였고 하늘의 구름과 점점 붉어지는 석양은 정말 멋있었다.

이스탄불은 정말 매력이 철철 넘치는 도시인 것 같다. 그 동안 대도시가 마음에 든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이스탄불은 싫은 점을 찾기가 힘들 정도이다.

한참을 앉아 있었으나 결국 해가 완전히 지는 것을 보지는 못하고 천천히 걸어서 숙소로 돌아오는데 저녁의 이스티크랄 거리에는 뮤지션들이 정말 많았다. 곳곳에서 다양한 인원이, 다양한 악기로,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명동과 대학로가 합쳐진 느낌이었고, 그들의 표정과 의도는 좀 더 순수해 보였다.

잠시 구경하다가 너무 피곤해서 후를 기약하고는 숙소로 돌아와 바로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