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터키]

[D+168/2014.6.3/사프란볼루,괴레메/터키] 정말 멋진 터키의 풍경, 태현이와의 재회와 작별

빈둥멀뚱 2014. 6. 4. 04:17

아침을 먹고 부지런히 준비하려고 7시에 칼 같이 맞춰서 내려갔는데, 아침은 커녕 식당에 불도 켜 있지 않았다. 손님이 없어서 좀 늦게 시작하려나 싶어서 다시 짐을 싸다가 8시에 내려오니 얼굴에 베개 자국이 남아 있는 채로 주인 아저씨가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조금 당황해 하며 자신이 늦잠을 잤다고 20분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하기에 웃으면서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거의 모든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3번째 만에 아침식사를 했다. 내가 막 먹기 시작하자 자연씨도 내려와서 같이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9시 반까지 사프란 여행사 사무실로 가야 했기에 9시 쯤 짐을 챙겨서 방 값(2박 120TL)을 치르고 숙소를 나섰다. 사프란 볼루의 숙소는 정말 넓고 깨끗했으며 한편으로는 전통가옥이다 보니 고즈넉한 맛이 있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 동안 있었던 도미토리와는 전혀 다른 편안함에 정말 잘 쉰 것 같다.

 

표를 예매하기 위해 같이 따라나선 자연씨와 여행사에서 인사를 나누고는 세르비스를 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까지는 멀지 않은 거리라서 금방 도착했지만, 버스는 대기하고 있지 않아 도대체 언제 출발할 지 알지 못했다.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작고 표정 변화가 많지 않은 할아버지가 나를 부르더니 안쪽 자리에 앉으라고 하셨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앉았는데, 알고 보니 구두를 닦아 주시는 할아버지셨다. 내 카메라를 보시고는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시길래, 번갈아 가며 사진을 찍었는데, 옆에 앉으시더니 주섬주섬 지갑에서 무언가를 꺼내셨다.

천천히 내밀길래 들여다 보니 그 동안 만난 여행객들과 같이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이었다. 아마도 이 할아버지의 취미가 여행객들과 함께 사진을 한 장 기념으로 찍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즉석 사진기가 없어서 사진을 찍어 드릴 수는 없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할아버지와 사진을 찍고 내가 간직하기로 했다. 의사 표현을 하실 때는 표정 변화가 거의 없지만 사진 찍고 난 후에만은 즐겁게 웃으셔서 정말 많이 좋아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 옆에 앉아 잼베를 가볍게 두드리며 놀고 있으니 금방 사람이 부르길래 악수로 이별인사를 대신하고는 버스를 타러 갔다.

하지만 기다리는 것은 작은 미니 버스였고 다시 한번 어디론가 향한 후에야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Ankara)를 향해 출발한 버스는 넓고 평탄한 길을 시원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사프란 볼루는 야간 이동이었기 때문에 밖의 풍경을 거의 볼 수 없었는데, 처음으로 접한 터키의 경치는 정말 아름다웠다. 사진으로나 보던 아니 그림으로 접하던 풍경이 가는 내내 눈 앞에 펼쳐졌다. 하얀 구름이 비치는 넓은 호수가 나왔다가도 잎이 푸르른 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 들판이 나오기도 하고 한 없이 넓은 밭이 나왔다가 어느 순간 산길을 올라가기도 했다. 모든 풍경에서 깨끗한 공기로 인해 시야가 정말 좋아서 멀리 있는 산과 엄청난 깊이의 구름이 모두 한 눈에 보여서 감동은 배 이상으로 커졌다. 이런 멋진 땅을 그리고 자연을 갖고 있는 터키 사람들이 정말 부러웠다.

쉴 새 없이 주는 차와 음료, 과자 등을 먹기도 하고 살짝 챙기기도 하면서 창 밖에 정신이 팔려 있다 보니 버스는 어느새 앙카라에 도착했다. 괴레메(Goreme)행 1시 버스가 방금 출발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가장 빠른 다음 버스인 3시 버스를 예매했다(1인 38TL). 터미널에서 비싸기만 하고 맛은 별로인 케밥으로 점심을 먹고는 한 동안 기다리다 다시 버스에 올랐다.

이번에도 조금은 비슷하고 조금은 다른 하지만 여전히 멋진 경치가 계속적으로 이어졌다. 자다 깨다 하면서 가는데 태현이에게 8시에 보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혹시 늦어져서 못 볼까 조금 조급한 마음이 생겼다. 7시쯤 네브세히르(Nevsehir)에 도착한 버스는 우리를 세르비스에 태웠고 동네 여기 저기를 다니며 터키 사람들을 내려주고는 마지막에 괴레메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우리는 미리 예약해 둔 ishtar cave pension의 도미토리에 짐을 던져두고는 태현이를 만나러 나갔다. 광장에서 태현이를 만나자 마자 반가운 마음에 저번에 찍지 못했던 사진부터 냅다 찍었다. 렌터카를 빌려 친구들과 구경을 하고 돌아온 태현이는 한국인 두 분을 더 만나 같이 올드 카파도키아 식당으로 가 저녁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터키 현지인을 공략하는 법을 어린 친구가 열변을 토하며 얘기를 해서 모두가 같이 즐겁게 웃었다. 10시 픽업으로 비행기를 타러 가야 하는 시간적 압박 때문에 반가웠지만 짧았던 시간을 아쉬워하며 한국에서 다시 만나기로 기약하고 헤어졌다. 정말 짧았지만 기분 좋은, 기막힌 우연이었다.

나도 내일 벌룬 투어를 위해 4시 반에는 숙소를 나서야 해서 일찍 돌아와 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