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터키]

[D+170/2014.6.5/괴레메/터키] 좀 실망스러웠던 그린투어

빈둥멀뚱 2014. 6. 6. 03:40

아침을 먹으면서 하늘을 보니 어제 가득했던 기구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날씨는 제법 맑고 좋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바람이 강해서 오늘도 기구들이 이륙하지 않았다고 했다. 도착한 다음날 예약 일에 맞춰 아무 문제 없이 기구를 탔던 나는 알고 보니 굉장히 운이 좋은 측에 속했다.

9시 반에 픽업을 기다렸다가 차를 타고 여행사로 갔다. 하나로 여행사에서 예약한 것이긴 하지만 한국어 투어가 아니라서 한국 분들이 거의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거의 대부분이 한국 사람들이었다. 오늘의 가이드 ‘인지’는 영어 발음이 제법 깔끔한 편이라 알아 듣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한 시간 정도를 달려 가장 먼저 간 곳은 지하 도시(Yeralti Sehri)였다. 지하 8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 곳은 적들의 공격 시 온 마을 사람들이 지하로 대피해 숨었다가 모든 상황이 끝나면 다시 땅 밖으로 나오는 대피처로 활용되었다고 했다. 지하에 있다 보니 층간 구분이 확실하지 않아 8층인지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통로가 꽤 컸고 중간 중간에 적들의 침입을 막는 둥근 돌 문이 세 개나 있었다. 우물, 환기구, 식량 저장고, 마굿간, 주방 등 다양한 공간이 있었고, 특히나 정말 넓었던 지하 8층에는 교회와 집회장, 임시 묘지까지 있었다.

베트남에서 봤던 구찌 터널을 생각하고 좁은 공간을 허리를 굽히고 고생고생하며 다닐 생각을 하다가 기대 보다 훨씬 큰 공간에 제법 여유 있게 다녔다. 물론 중간 통로라던가 적의 침입을 막는 입구는 정말 좁았다. 인지에게 들으니 사실은 지하 8층 보다 더 깊고, 더 멀리, 더 광대하게 형성된 지하 도시에 가깝지만 발굴 중에 붕괴 위험으로 더 이상의 발굴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적들의 침입이 정말 싫었던 모양이다. 돌을 파내서 이 정도의 넓은 동굴을 파는 것은 정말 고통의 시간이었을 텐데, 그 규모를 보니 정말 놀라웠다.

다음으로는 3.5km 정도의 트래킹 후 점심식사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먼저 밥을 먹기로 했다.  일랄라 밸리(Ihlara valley)사이를 흐르는 강 옆에 위치한 식당이었다. 위치도 좋고 물소리나 주변 풍경은 멋졌지만 음식 맛은 최악이었다. 내가 터키에 와서 먹은 음식 중에 가장 맛이 없었다. 처음에 소고기 케밥이 먼저 나와서 한 입 먹었다가 너무 맛이 없어서 이거 왜이러지 치킨 케밥은 좀 낫겠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뒤따라 나온 치킨 케밥은 소고기 케밥보다도 더 맛이 없었다. 정말 눈물이 나는 상황이었다. 모조리 남기고 싶었지만 배가 고파서 모조리 다 먹어 치웠다.

우리 옆에 앉은 한국인 부부는 ‘전에 먹은 것 보다 맛있네’라며 열심히 먹었는데, 전에 먹은 것이 도대체 얼마나 맛이 없었던 것인지, 그 두 분이 실로 안타까웠다.

식사 하나로 투어에 대한 호감이 뚝 떨어져 버렸지만, 다음으로 간 일랄라 밸리의 saint george church에서의 경치는 제법 볼 만했다. 특히 그 쪽으로 걸어가는 길이 물 옆의 완만한 산책로라 걷기에도 주변을 돌아보기에도 매우 좋았다. 꼭대기에 올라 주변을 둘러 보고 단체 사진을 한 장 남기고는 차로 돌아왔다.

 

차로 이동하는 와중에서도 빗줄기는 계속 굵어졌다 얇아졌다를 반복했고, 한 동안 그쳤다가 우리가 셀리메 수도원(selime monastery, 기독교 핍박을 피해 도망쳐서 기독교 교리를 교육했던 곳이라 함)에 도착하자 다시 내리기 시작해서 입구에 막 들어가려고 하니 엄청나게 쏟아졌다. 절벽을 따라 굴을 파고 수도원을 만든 곳이라 경사로를 올라가야 하는데, 워낙 빗줄기가 심해서 결국 포기하고는 모두 차로 돌아왔다.

음식에 이어 날씨도 도와주지 않는 날이었다. 그 뒤로 터키 전통점에 들려 로쿰과 전통 과자를 시식하고 돌과 보석을 다듬는 곳을 견학하고는 피젼 밸리(pigeon valley)로 향했다. 여행사와 연계된 이 상품점에 관해서도 불만을 갖은 관광객 분들이 있었고 나 역시 썩 내키지 않는 시간이었다.

피젼밸리에서는 괴레메 마을이 내려다 보였는데, 절벽을 따라 많은 구멍으로 비둘기가 날아드는 모습도 간간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는 다 같이 괴레메로 돌아왔는데, 그나마 좋다고 들었던 그린 투어도 지하 도시를 본 것, 일랄라 밸리를 조금 걸은 것을 제외하고는 꽤나 실망스러웠다. 별로라는 레드 투어를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투어가 끝난 것은 5시가 조금 안된 시간이었는데, 이미 배가 고파진 우리는 태현이한테 들었던 괴레메 식당을 찾았다. 하지만 주문 후 처음 나온 것이 차갑게 식은 빵이라 이곳도 큰 기대가 되지 않았다.

막상 음식이 나오고 보니 점심이 너무 별로였던 것인지, 아님 기대치가 낮아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맛은 제법 좋았다. 다만, 양이 너무 적어서 도자기 그릇을 싹싹 긁어 먹고도 밥을 다 먹지 않은 것처럼 뚜렷한 아쉬움이 남았다.

숙소로 돌아와 동부쪽의 ‘반’을 다음 도시로 잡을까 하다가 가이드 북을 보고 공부를 좀 한 후, 단번에 느낌이 오는 도시가 있어 시바스(sivas)를 거쳐 디브리이(Divrigi)로 가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오토가르에서 표를 비교하니 메트로 버스에서 네브세히르에서 시바스까지 바로 가는 차(12시, 7시, 세르비스로 네브세히르로 갔다가 갈아타고 가는 버스)가 있길래 구입했다(30TL). 같은 여정이라도 여행사 따라 가격이 다르기 때문에 꼭 비교 후 사야겠다.

오늘은 차 안에서만 앉아서 거의 걷지 않았기 때문에 맥주를 한 병 사 들고 괴레메 바로 뒤편의 전망대로 올라갔다. 처음에는 좀 돌아서 뒤쪽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돌아가 봤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차도 올라갈 수 있도록 길이 정말 잘 되어 있었다. 사진을 여러 장 찍어 보니 제법 그럴 듯하게 나왔지만 야경은 생각보다 볼 것이 없었다. 하지만 적당한 밤 산책으로 저녁이 기분 좋고 편하게 소화가 되었고, 아쉬웠던 그린 투어의 빈자리가 조금은 채워지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