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아이슬란드]

[D+226/2014.7.31/호픈, 뮈바튼/아이슬란드] 잊지 못할 해변 드라이빙

빈둥멀뚱 2014. 8. 1. 09:19

 

 

완벽했던 캠핑 장소에서 아침을 맞았다. 밤새 바람 막이 노릇을 톡톡히 해준 나무들 덕에 아침 역시 바람이 전혀 없이 맞이 할 수 있었다. 모두들 일찍 일어나 텐트를 정리하고 스프, 계란설탕토스트로 아침을 먹었다. 물론 정말 맛있었다.

 

 

우리의 캠핑장소는 사진에 보이는 원통형 건물 오른쪽 차 뒤로 보이는 나무들 사이이다. 캠핑장에서 보면 아무도 안 갈 것 같은 곳이지만, 안에 들어가면 정말 안락한 대박 공간이 있으니 혹시 아이슬란드의 호픈 캠핑장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 들려 보시길..

 

오늘은 동부 피오르드를 둘러 보고 내륙으로 조금 들어가서 오프로드를 경험하고는 가능하다면 뮈바튼(Myvatn)까지 갈 생각이라 조금 서둘렀다. 탱크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저녁을 맛있게 먹을 계획으로 어제 못 먹었던 고기, 할라피뇨 고추, 피클, 핫도그용 소세지, 빵 등을 잔뜩 사서는 길을 떠났다.

 

아이슬란드답지 않게 정말 맑고 화창한 아침이었다. 동부 피오르드는 해안선을 따라 한 쪽으로는 바다가 다른 한쪽으로는 절벽과 폭포가 멋진 최고의 드라이빙 코스였다. 물론 서부 피오르드가 더 멋지다는 말에 기대를 많이 하지는 않았는데,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승혁이가 내일 떠나기 때문에 오늘 내일 조금이라도 더 함께 즐기기 위해 정말 바쁜 마음으로 열심히 달려 가고 있었다.

 

 

조금 달리다 보니 비크(vik)에서 본 것과 비슷한 검은 해변이 보였다. 그때 절벽 위에서 내려다 보면서 해변을 차로 달리고 싶었지만 들어가는 길이 없어 포기했었는데, 이번에는 해안 도로와 제법 가까이 해변이 있길래, 무턱대고 안으로 들어갔다. 티비에서 자동차 CF를 보면 자동차가 해변을 물을 튀기며 멋지게 달리는 모습이 정말 환상적으로 비춰져서 차에 관심이 있는 보통 정도의 사내라면 한번 쯤은 해변을 차로 달리는 상상을 해 보았을 것이다.

 

 

 

 

나도 나름 로망으로 갖고 있던 일 중 하나여서 도로를 벗어나 해변 쪽으로 향하는 순간 이미 가슴은 쿵쾅쿵쾅거리고 있었다. 그 때 해변을 달리지 못했던 것이 모두들 내심 아쉬웠는지 들어가자 마자 환호성을 질러댔다.

 

 

 

 

 

 

차를 파도가 치는 해변가까지 가지고 들어가 정말 영화나 CF에서 본 것처럼 파도를 가르며 해변을 달렸다. 무른 모래 바닥에 차가 조금씩 밀리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짜릿했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심장은 차의 엔진처럼 빠른 속도로 두근두근거렸고 정말 오랜만에 극도로 흥분했다. 파도가 밀려들어오는 순간 물살을 가르며 그 위를 달릴 때 바닷물이 높이 치솟아 창문을 젖시며 느껴지는 짜릿함이란 정말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자춘이와 승혁이는 연신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고 다른 둘은 계속 감탄사를 뿜어냈다. 모두가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고 정말 놀랍고도 즐거운 동시에 엄청나게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심장이 뜨겁게 뛰는 황홀한 경험은 여기까지였다. 차를 돌려 다시 도로로 나가려는 순간 연한 모래 바닥에 차는 단단히 박혀버렸다. 돌을 받치고 모래를 두 손으로 열심히 파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완전히 박혀버린 차는 도저히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차에 실린 짐을 전부 차 밖으로 꺼내고 승혁이와 계속적으로 땅을 파가며 차를 빼는 노력을 하는 동안 자춘이는 도로로 나가 도움을 청했고, 약 30-40분이 흐른 후 친절한 아이슬란드 아저씨가 거대한 트럭을 끌고 우리 차를 빼러 해변가로 내려와주었다. 그 전에도 다른 아이슬란드 청년이 와서는 도구는 없어서 구출해주지는 못했지만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다.

 

 

 

 

 

호픈의 구출팀(rescue team)의 일원이라는 아저씨는 우리를 한 번 구출해주었지만 그 이후에도 도로로 나가는 길에 차는 두 번이나 더 빠졌고 우리를 끝까지 지켜보며 계속 탈출 시켜준 아저씨 덕분에 무사히 도로로 돌아갈 수 있었다. 몇 시간의 사투 끝에 결국 도로로 돌아온 우리는 아저씨에게 감사의 사례를 하고 인사를 정중히 한 후 다시 동부 피오르드 해안가를 달렸다. 해안가를 달린 것이나 몇 번씩 자갈에 파묻혀 탈출을 한 것이나 정말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모두가 나 때문에 고생을 한 것인데, 전혀 불편한 내색 없이 즐거웠다고 말해주는 동생들이 정말 고마웠다.

 

 

 

조금 달리니 거의 점심 때도 가까웠고 해안가에서 모두가 힘쓰며 열심히 뛰어다니다 보니 빨리 배가 고파져서 Djupvogur 캠핑장에 가서 핫도그를 구워 피클과 어제 먹다 남은 토마토 소스, 할라피뇨를 함께 싸서 맥주와 먹었는데 정말 너무너무 맛있었다. 고생도 해서겠지만 정말 오랜만에 먹는 핫도그와 맥주 조합이다 보니 맛의 감동은 몇 배가 되었다. 거기다가 캠핑장의 뷰와 날씨가..... 어후.. 

이후 술 안하는 자춘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1번 도로를 달리다가 939번으로 갈아타서 동부 피오르드를 다 돌지 않고 조금 넘겼다. 비슷한 광경이 계속되어서 이기도 하지만 오전에 너무나 멋진 경험을 했고 다들 오프로드로 들어서길 원해 최대한 오프로드를 찾아 달렸다.

 

 

 

 

 

 

F907번에 들어서 달리다 도로로 갑자기 뛰쳐나온 양을 칠 뻔하기도 했다. 다행히 잘 피했고 그 이후로는 멋진 폭포를 구경하며 점점 더 오프로드로 깊숙이 들어섰다. F905길을 따라 askja lake를 목표로 달렸다.

 

 

 

 

 

 

이번에 달리는 오프로드 길은 전에 랜드마날라우가르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풍경이었다. 그 때는 호수와 분화구, 많은 이끼로 인해 제법 푸르른 환경이었다면 이번에는 정말 달 표면을 달리는 것 같은 척박하고 거친 돌 많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이었다. 길도 겨우 겨우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하지 않았고 그나마 큰 바위를 피해 가야 해서 엄청난 커브 길이 끝 없이 이어졌다. 지도상으로 멀지 않아 보였던 아스캬 호수는 실제로는 엄청나게 돌고 돌아가야 해서 시간이 생각한 것 보다 배 이상 걸렸다. 하지만 처음 접해 보는 신비로운 환경에 지루할 틈은 조금도 없었다.

 

 

몇 번의 엄청난 검은 흙빛 물줄기가 거칠게 흐르고 있는 강도 건너 갔고 다리 앞에 서 있는 국립 공원 레인저로부터 이 곳이 국립 공원이라는 이야기와 결코 도로를 벗어나지 말라는 주의를 함께 들었다.

 

한참 험한 길을 달리고 달려 도착한 아스캬 캠핑장에서 비 내리는 밖을 피해 캠핑장 내부에서 일단 라면을 하나씩 끓여 먹었다. 저녁은 뮈바튼 가서 먹기로 해서 일단 간식 겸해서 먹은 것인데, 이 때 이미 시간이 5시가 넘어 있었다.

 

 

 

 

온 김에 호수는 좀 보고 가야겠다고 해서 다 같이 차를 타고 다시 한 동안을 오르막 길을 달렸다.

 

 

 

가는 길에 고도가 높아져서 그런지 비는 점점 눈으로 변해갔고 7월 말 여름의 한 가운데 우리는 눈 내리는 오프로드 길을 달리고 있었다. 묘하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마침내 도착한 호수의 주차장은 주변에는 온 통 눈이었고 안내판을 확인하니 이 곳에서도 호수까지는 약 2.5km를 걸어야 갈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왕복 한 시간이 넘은 코스였기에 뮈바튼까지 갈 길이 멀기도 했고 저녁 식사 시간도 애매 해서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주변을 조금 둘러 보기만 하고 호수까지 가는 것은 포기했다.

춘자가 순식간에 만든 조그만 눈사람을 차 앞에 수호신처럼 세우고 차를 돌려 조금 빠른 것처럼 보이는 F88도로를 따라 나오려고 한참을 달리는 데, 어느 순간 캠핑장이 나오면서 이 이후의 길은 small jeep들은 가지 말라는 푯말이 나왔다. 바로 옆에 여행자 안내 센터가 있길래 물어보니 앞에 큰 강이 막혀 있어 일반적인 지프들로는 건너기 힘들다고 알려 주었다.

 

 

아마 우리가 다니다가 본 타이어가 엄청나게 크고 인치 업을 사정없이 해서 거의 기어 올라 타야 하는 몬스터 트럭들 정도는 되야 건널 수 있는 모양이었다. 굳이 차를 물 한가운데 세우고 고생할 이유가 없어 다시 차를 돌려 우리가 온 길인 F905를 따라 1번 링로드로 나왔다. 하지만 이 길을 돌아 나오는 데만도 1시간 반이 추가로 걸렸다.

 

 

모두들 배고프고 장시간의 이동에 지쳐 있었지만 오프로드가 끝나갈 때쯤 만난 늦은 아이슬란드의 노을진 하늘은 모든 것을 보상해 주기에 충분했다. 그냥도 멋졌고 물에 비친 모습도 멋졌으며 귓가에 부는 바람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뮈바튼 캠핑장에 도착한 것은 거의 10시 반 경이었고 식당에 사람이 가득 차 있어서 추위에 떨며 야외 테이블에서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었지만 그래도 맛은 변함없이 좋았다. 하루 종일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정말 이동도 길었고 다양한 풍경과 환경, 날씨를 만났다. 이 모든 것이 포함된 것 같은 고기 맛이었다.

 

 

텐트를 칠려고 보니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늦은 김에 그냥 텐트 치고, 모른 척하고 내일 일찍 떠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굉장히 조용한 목소리로 나긋나긋하게 말씀하시는 캠핑장 주인아저씨가 열심히 치고 있던 우리의 텐트로 와서 돈을 받아 가셨다(1인 1500ISK). 돈도 낸 김에 늦었지만 뜨거운 물로 샤워해서 피로를 좀 풀고 내일도 늦게 일어나기로 다들 말을 맞추고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