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이집트]

[D+267/2014.9.10/카이로/이집트] 일이 술술 풀리는 하루, 기자 피라미드 구경과 에티오피아 비자 받기!

빈둥멀뚱 2014. 9. 10. 22:50

오늘은 실패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일어나 준비했다. 8시 반쯤 숙소를 나서며 숙소 바로 옆에 있는 빵집에서 빵을 세 개(4LE) 사서는 나세르역으로 갔다. 가는 길에 복사하는 곳이 있길래 여권을 각각 2장씩 총 4장 복사했다(1LE). 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도로도 꽉 막혀 있었고 지하철에도 사람이 정말 엄청나게 많았다. 카이로의 교통 정체는 어느 대 도시 못지 않게 정말 심각한 것 같았다. 가는 길에 지하철을 기다리며 사온 빵을 먹었는데 정말 맛이 없었다. 터키와 튀니지에서 너무 맛있는 빵을 많이 먹어서인지 오늘 산 빵은 마치 종이를 씹는 것 같았다. 방금 만들어서 뜨끈뜨끈한 빵이 이 정도니 정말 이집트 빵 수준이 걱정스럽다.

9시가 조금 넘어 에티오피아 대사관에 도착해서 벨을 누르니 어제 아저씨가 얼굴을 빼꼼 내미시더니 5분만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보드 블럭에 앉아 기다리니 다시 얼굴만 빼꼼 내민 아저씨가 우리에게 비자 신청서를 주셨다. 그리고는 작성이 거의 끝날 때쯤 정확히 다시 얼굴을 들이 미셨다. 비자 쓰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정확히 파악하고 계신 것 같았다. 우리는 준비해간 여권 복사본, 사진 1장, 30USD(1인당), 비자 신청서를 아저씨 얼굴에 들이 밀었고 아저씨는 또 다시 5분만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안쪽으로 사라졌다.

잠시 뒤에 아저씨는 다시 나타나서 우리에게 영수증을 주며 오늘 오후 2-3시 사이에 비자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당일 비자 발급이라니 그 동안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고 하루라도 빨리 다합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는 들뜨기 시작했다. 우리는 도키(Dokki)역으로 향하며 머리를 열심히 굴렸고 빠르게 기자 피라미드를 보고 돌아와 비자를 받고는 밤 차로 다합에 가기로 했다.

-사진에 보이는 모스크 앞에서 버스를 타면 기자 피라미드를 향함-

도키역에서 바로 피라미드로 가는 버스가 있다는 기자(Giza)역을 향했다. 앞서 여행한 분들의 블로그에서 기자역이 폐쇄되었다는 글을 봤지만 묻고 확인해서 가니 기자역은 다시 운행 중이었다. 기자역에서 내려 기자역을 직각으로 지나가는 큰 도로가 있는데 이 도로의 왼편, 즉 서쪽을 따라 지하도로 끝나는 지점에 도착한 후 길을 건너 큰 모스크 앞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이 모든 과정을 함께한 아저씨가 있었는데 우리가 기자역에서 내리니 계단을 같이 내려가며 자신도 피라미드로 가는 버스를 탄다고 버스 탈꺼면 따라 오라고 하셨다. 우리는 잘 됐다 싶어 아저씨가 알려주는 대로 기차역을 나가서 시위 진압용 차량이 잔뜩 서있는 골목길을 가로 질러 큰 도로를 향해 계단을 내려 간 후 도로를 따라 조금 걸으니 버스 타는 곳이 나왔다.

이 곳에서 그 아저씨는 갑자기 아무도 없는 승합차 한 대를 잡더니 피라미드에 간다면서 우리보고 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텅 빈 승합차에 탈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기에 됐다고 하고 바로 아저씨를 무시하고는 다른 버스를 기다렸다. 우리가 타지 않자 그 아저씨는 이번에는 다른 큰 버스를 가리키며 피라미드에 간다고 했고 그 버스의 차장에게 피라미드에 가는 지 한 번 더 확인한 후 버스에 올랐다(1LE). 아저씨는 우리와 같이 버스에 올라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걸며 어느 쪽 입구로 들어갈 것인지 물었고 이미 신용을 잃은 아저씨에게 우리는 고맙다고만 하고 이제부터는 우리끼리 가겠다고 하고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자, 피라미드에 간다던 아저씨는 급하게 버스에서 내렸다.

-마이크로 버스-

 

빈 승합차에 어떤 의도로 태우려고 했는지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우리를 데려가서 비싼 요금을 받거나 아니면 비싼 투어를 시키거나 혹은 심한 경우 우리를 어디론가 납치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물론 순박한 의도의 비어있었던 마이크로 버스 일 수 도 있지만 그 승합차는 너무나도 깨끗한 새 차에 아무런 번호도 표시도 없는 것으로 봐서는 마이크로 버스일 확률은 적을 것 같다.

하나의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하고는 버스를 타고 쭉 가다가 오른쪽으로 우회전하기 직전에 1 파운드를 주고 내렸다. 피라미드 바로 앞 길은 일방 통행이라 버스가 갈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 인 것 같았다. 여기서부터 택시를 타라는 둥 낙타를 타라는 둥 하는 호객꾼들이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고 입구까지 걸어갔다. 입구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전에 쓰던 학생증을 내밀었지만 국제 학생증만 받는다는 직원의 말에 포기하고 입장권을 샀다(1인 80LE). 들어가는 곳에서 가방 검사를 하더니 내 멀티 툴을 찾아내서는 여기 저기 확인하더니 들고 입장이 불가하다고 했다.

우리는 원래 구경을 하고 다른 쪽 출구로 나가려고 했지만 별 수 없이 이곳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혹시 여행하면서 멀티툴(맥가이버 칼 등)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기자 피라미드 갈 때는 놓고 가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입구에 들어가기 전부터 눈에 띄었고 들어가서도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쿠푸(Khufu)왕의 피라미드였다. 이집트 피라미드 중 가장 크다고 알려져 있고 약 2-3만명이 동원되어 20년간 지어졌다니 정말 할 말 없는 건축물이다. 정말 거대하고 엄청난 위용이 느껴졌지만 2.5톤의 돌 230만개를 깨고 옮기고 쌓았을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니 이집트 파라오 욕심이 얄밉게 느껴졌다. 동시에 굉장한 유적지를 구경할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옛날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카푸레(Khafre)왕의 피라미드와 멘카우레(Menkaure)왕의 피라미드를 이어서 구경했지만 모두가 내부 구경을 위해서는 추가 요금이 필요한 곳이라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혹시나 하고 멘카우레왕 피라미드 뒤 편에 있는 여왕의 피라미드 내부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그 곳은 내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멘카우레 왕의 피라미드-

-멘카우레 왕 뒤 편의 여왕의 피라미드와 사막 풍경-

 

-여왕의 피라미드, 멘카우레왕, 카푸레왕, 쿠푸왕의 피라미드 일부가 모두 보이는 사진-

잠시 앉아서 쉬다가 이번에는 사막 길을 가로 질러 내려가 스핑크스를 구경하러 갔다.

공사 중이라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기대 보다는 스핑크스가 제법 크고 멋있었다. 멀리서 보기에는 조금 허술하고 안 좋아 보였지만 가까이 가 보니 아래쪽 발 모양과 곡선이 남아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어렸을 적 수수께끼를 내어 틀리면 사람들을 잡아 먹었다는 스핑크스의 설화가 생각나면서 그때 무서웠던 스핑크스를 상상했던 나 자신이 조금 웃기기도 했다.

돌아나오며 카푸레왕 옆에 있는 여왕의 피라미드는 공짜로 구경이 가능해서 2 군데를 들어가 안을 구경했는데 생각보다 통로도 굉장히 좁았고 상당히 더웠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내려가서 내부 석실을 구경하고는 다시 땀을 뻘뻘 흘리며 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와 시원한 바람을 맞는데 정말 시원하고 상쾌했다.

기대에 나름 부응하고 재밌었던 기자 피라미드 구경을 마치고 다시 입구를 통해 큰 길로 나와 지나가는 버스를 물어보고 탔다(1LE). 기자역으로 돌아와 바로 도키역으로 가서 길거리에서 파는 쿠사리를 큰 사이즈로 하나 사 먹었다(7LE).

비록 길거리에서 파는 것이지만 지금까지 먹은 것 중에 가장 맛이 좋았다. 대사관 앞으로 갔더니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2시에서 3시 사이에 오라고 했는데 2시 반 쯤이었는데 아직 문을 열지 않고 있는 듯 했다. 한 10분 기다리니 조그만 문이 열리며 ‘코리안?’이라고 하며 우리를 제일 먼저 찾았다.

7-8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우리를 가장 먼저 찾았다는 것이 무척이나 반가웠고 바로 얼굴만 확인하고는 여권을 돌려주었는데 3개월짜리 복수 여권을 주었다. 단수 여권을 신청했는데 알아서 복수 여권을 준 것도 좋았다. 물론 꼭 필요하지도 않지만 재입국이 가능하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므로..

어제 갔던 버스 터미널에 다시 가서 고민하다 7시 반 차로 티켓을 샀다(1인 90LE). 당일로 비자가 될 줄 상상도 못했기에 짐을 안 빼둔 숙소에 가서 제대로 하루치 숙박료를 지불하고는 여유 있게 씻고 짐을 싸며 좀 쉬었다. 한 10분 정도 눈도 붙이고는 나가서 쿠사리로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다(큰 것 6LE).

기다리는 동안과 버스에서 먹을 맥주를 샀는데, 찍어달라던 직원의 표정이 찍을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긴장했는지 엄청 굳어 있었다. 

짐을 챙겨 나와서 버스 터미널에 가니 꽤나 좋은 버스가 있었다. 에어컨도 잘 나올 것 같고 엄청 새 버스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좀 뒤에 좀 덜 좋은 버스가 왔다. 어쩔 수 없지 하고 버스에 타려고 했는데 다합가는 버스가 아니라고 했다. 잠시 옆에 서서 조금 더 기다리니 가장 안 좋은 버스가 왔고 그 버스가 다합 가는 버스였다.

그래도 에어컨도 시원하게 잘 나왔고 자리도 많이 좁지는 않은 편이라 자리에 올라 출발을 기다렸다. 7시 반 버스는 15분 정도 늦게 출발을 했고 혹시 뭔가 있을까 싶어 주의 집중하며 밖을 살피고는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