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모로코]

[D+239/2014.8.13/메르주가, 페스/모로코] 그랑 투어 택시를 타고 페스로

빈둥멀뚱 2014. 8. 14. 07:15

 

정말 쉽지 않은 밤이었다. 물을 충분히 갖고 가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고 생각 보다 사막의 기온은 밤이라고 많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려고 밖에 누웠음에도 간간히 부는 바람은 여전히 뜨거웠고 너무나 건조해서 피부와 입술이 모두 말랐다. 누워 있으니 시원한 맥주나 물 생각이 정말 간절했다. 새벽에 기온이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춥거나 쌀쌀한 정도는 전혀 아니었다.

짐을 챙겨서는 다들 다시 낙타에 올랐다. 수연이의 낙타는 여전히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제만큼 많이 울부짖지는 않았다. 하늘에 안개와 구름은 여전히 많아 제대로 된 일출을 보기는 힘들었다. 시간이 좀 지나 해가 꽤 하늘로 올랐을 때에도 구름에 갇혀 제대로 된 윤곽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다시 잠잠하고 선선한 사막의 아침을 모래에 미끄러지듯 달려 출발지로 돌아왔다.

 

낙타에서 내려 주변을 좀 걸으며 사진을 찍고는 아침 식사 전에 잽싸게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를 했다.

 

찝찝했던 느낌이 좀 없어지며 정말 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이 풍부해서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었던 인도 사막 투어와는 다르게 물이 귀하다보니 정말 제대로 사막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아침 먹고 페스(Fes)에 같이 가기로 한 나기또-치에 커플과 함께 리사니(Rissani) 버스 터미널에 내렸다.

 

넷이 함께 악명 높은 그랑택시(grand taxi)를 타고 페스로 가기로 한 것인데 내리고 보니 버스 뿐 터미널에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버스는 오전 10시에 출발이고 CTM버스는 오후 8시 출발이라고 했는데, 로컬 버스 요금은 160디람이라고 했다. 택시는 없냐고 차장에게 물으니 없다고 하길래, 일단 시간도 있고 해서 짐을 옆에 놓고 잠깐 기다리라고 한 후에 주변을 탐문했다.

 

 

물을 사면서 물으니 약 5분 거리에 택시 정류장이 있다길래 그쪽을 혼자 찾아갔다. 택시는 앞에 2명 뒤에 4명을 태우고 가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는데, 가격은 페스까지 한 사람당 200디람 한 대에 1200디람이 정가인 듯 했다. 1200디람을 내라고 하길래, 쉽게 가격이 내려가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흥정을 해서 1000디람에 가기로 하고 바로 택시에 올라 다 같이 출발했다.

 

오늘 하루 우리와 거의 8시간 정도를 함께하게 된 ‘야히야’는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아라비아어, 베르베르어가 모두 가능한 정말 영리한 청년이었다. 나이보다 많이 들어 보이는 외모이기는 했지만 26살이었고 예전에 여행 관련 일을 해서 언어를 모두 관광객으로부터 익혔다고 했는데 들어 본 영어, 스페인어는 정말 잘했다.

이야기 하다가 많이 친해져서 야히야는 이후 마을이나 관광 포인트를 지날 때 마다 뭐가 유명한 곳인지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을 시간도 충분히 주었다.

 

첫 번째로 구경하라고 세워 준 지즈 밸리(ziz valley)에서는 우연히 사진 찍으러 온 신랑, 신부와 하객들을 만났는데 사진 찍히는 것을 원치 않아 사진에 담을 수는 없었지만 전통 복장과 그들의 문화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모로코 결혼은 보통 6일 동안 진행되고 신랑 집에서 친지와 친구, 지인들을 초대해서 계속적으로 축제를 벌인다고 했다. 신부는 온 몸이 완전히 가려져 있어 전혀 볼 수 없었는데 많은 장식구로 치장을 하고 있었다. 물어보니 오늘이 첫 날이라고 했는데 같이 모인 가족들이 식당에서 나와 차에 올라서는 빵빵 거리며 어디론가를 향해 출발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다른 차들을 추월하며 거칠게 운전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랑 택시(화용형님 블로그에 따르면..)의 명성과는 다르게 야히야는 정말 안정적으로 편안하게 운전하며 모로코의 거친 황야 길을 나아갔다. 기온이 점점 올라가긴 했지만 햇빛만 피할 수 있으면 계속적으로 바람이 들어와서 크게 덥지는 않았다.

9시 반쯤 출발한 우리의 택시는 1시를 조금 넘겨 어느 한 마을에서 점심을 위해 정차했다. 아침이 좀 부실했던 차에 기대하며 내려 보니 연속된 여러 식당의 숯불에서 다들 열심히 고기를 굽고 있었다. 격렬하게 솟아 오르는 연기 사이에서 다양한 고기가 정말 맛있게 익고 있었다. 화용이 형님 블로그에서 봤던 바로 그 모습 그대로라서 정말 엄청 기대가 됐다.

 

 

맛있어 보이는 고기를 욕심 내며 1kg사고 따진도 중간 크기를 하나 주문해서는 2층에 올라가 기다렸다. 먼저 양고기 따진이 왔는데 지금까지 먹어본 맛 중에 단연 최고였다. 부드럽고 전혀 비리지 않은 양고기와 국물의 조합이 정말 끝내줘서 ‘이게 진짜 따진이구나’싶었다. 따진을 넷이 정신 없이 해치우고 다음으로 올라온 소고기를 먹었다. 맛은 영락 없는 양고기 맛이었고 매달려 있는 크기나 갈비뼈의 크기 등 모든 것이 양고기 같았는데 파는 사람이 소고기라고 하니 그냥 소고기인가보다 생각하고 먹었다.

 

하지만 기대가 워낙 컸던 탓인지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부분 탄 곳과 익지 않은 곳이 있어 적당히 걸러가며 먹었다. 그리고는 다시 도로 위를 열심히 달렸다. 중간에 사과(10디람/kg, 약 1300원)가 유명한 마을을 지나치면서 사과도 사고 페스에 거의 도착해서는 엄청난 크기의 석류도 샀다(15디람/kg, 약 2000원).

 

마침내 페스의 메디나에 도착해서 운전하느라 고생했던 야히야에게 돈을 지불했다. 돈을 받으면서 아주 즐거워하고 만족하는 야히야를 보니 우리도 기분이 좋았다.

 

미리 숙소를 예약하고 온 나기또-치에 커플을 따라 가서 숙소를 구경했다가 흥정이 전혀 되지 않아 한참을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한 숙소를 잡았다(더블룸 250디람). 사막에서부터 쌓였던 피로가 풀리지 않았는데 또 다시 장시간 이동을 해서 우리 둘은 완전히 지쳐 있었고 숙소도 생각보다 비싸고 시설도 나쁜 편이라 피로감은 더욱 심해졌다.

메디나를 돌아다니며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는 금방 곯아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