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모로코]

[D+244/2014.8.18/쉐프샤우엔, 아실라/모로코] 오 필승 맥주!!

빈둥멀뚱 2014. 8. 19. 07:29

 

 

 

일찍 일어나 짐을 미리 다 싸고는 시내 중심가로 가서 빵과 롸이프를 차와 함께 마셔 아침을 해결했다. 10시에 출발하는 버스 시간에 맞춰 터미널에 가 미리 짐을 싣는데 짐 값을 무려 가방당 10디람이나 달라고 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짐 값을 달라고 하는 나라들이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버스표를 사면 당연하듯이 짐이 몇 개고 상관없이 버스에 짐을 싣지만 인도, 스리랑카 그리고 모로코에서는 버스에 타면 짐 값을 요구한다. 인도에 있을 때는 2009년 배낭 여행할 당시 전혀 짐 값을 요구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예전 기억만 생각하고 짐 값 달라는 사람들의 요구를 자연스레 무시했었다. 인도는 워낙 자기 멋대로 요구하거나 일단 던져 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는데 그러고 나서 가만히 지켜 보니 인도인들끼리도 짐 값을 주고 받는 걸로 봐서는 금액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인도도 짐 값을 받는 분위기로 바뀌는 것 같다.

스리랑카에서도 몇 번의 실랑이가 있었고 경우에 따라 주기도 혹은 안 주기도 했었다. 나의 짐 값에 대한 대응 방식은 이렇다. 저번에 CTM버스를 탈 때도 쓴 적이 있긴 하지만 일단 짐 값을 달라고 하면 못 들은 척 하다가 여러 번 물으면 ‘다른 버스는 짐 값을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왜 너만 달라고 하느냐’라는 식으로 버티고 안 주다가 계속 달라고 하면 그냥 짐을 짐 칸에 안 싣고 들고 타겠다고 한다. 여기까지 해서도 안되면 그냥 적당히 주거나 요구하는 금액을 주고 만다.

물론 마지막까지 짐을 안 싣고 버티다가 출발 직전에 흥정해서 싼 값만 주거나 안 주고 탄 적도 있었지만 체력 소모도 심하고 적당히 할 필요도 있어, 이 정도까지 하는 일은 많지 않다. 태도가 굉장히 불량하다던가 뭔가 기분이 심하게 상했을 때 정도?

위와 같은 방법으로 각 나라나 도시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나서 ‘아 여기는 짐 값이 이정도 금액으로 있구나’하는 것을 파악하고 나면 다음부터는 크게 반항(?)하지 않고 적합한 금액이면 내고 탄다.

오늘도 탕헤르(Tangier)행 버스에 오르려고 하는 데 짐 값을 요구하기에 가방당 5디람씩만 주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부당한 10디람씩을 요구하기에 위와 같은 방식을 겪으며 싸웠다. 물론 말로만..

일행을 먼저 차에 태우고 계속 실랑이 벌어졌지만 녀석들은 호락호락 하지 않았고 오늘은 왠지 좀 귀찮아져서 그냥 10디람씩 20디람을 내고 말았다. 하지만 기분이 많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대부분의 모로코 사람들이 좋고 친절하며 밝은 데 반해서 모로코에서 외국인들을 상대하는 직업(여행사, 버스 관련 업종, 관광지 식당, 관광지 상점)을 가진 사람의 막무가내나 바가지, 심한 호객행위는 정도가 조금 지나치다. 인도에서도 흔히 겪던 일이었지만 인도 사람들은 워낙 마르거나 왜소해서 위압감이 적었는데 모로코 사람들은 조금 더 거친데다가 덩치가 큰 사람들도 있고 인도인들처럼 잘 흥분해서 분을 삭히지 못하는 모습도 가끔 보인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시비가 제대로 붙거나 위험한 적은 전혀 없었지만 그들의 거친 상행위에 불편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며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외의 사람들은 착하고 친절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크게 의심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10디람(1300원 정도)를 불쾌하게 지불한 데 관해서는 오래 생각하지 않는 것이 건강 상에 좋으므로 일단 잊고 가기로 했다. 버스는 10시가 조금 지나서야 출발했고 에어컨은 고장나서 전혀 나오지 않았고 버스에 창문도 전혀 없었지만 지붕에 뚫린 구멍으로 상당히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서 달릴 때는 정말 전혀 덥지 않았다. 한참을 달리다가 이상한 냄새가 나길래, 여기는 뭐 하는 곳인데 냄새가 이렇지 하면서 밖을 봤다.

그러나 알고 보니 내 옆 자리에 앉은 아이가 토를 한 것이었다. 애 엄마의 무릎에 앉아서 버스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버스 경험이 적다 보니 속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재빨리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좀 건내주었는데 애 엄마가 제법 어려 보이는 데도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주변에 도움 요청도 하지 않고 애를 달래가며 뒷정리를 깔끔하게 하고 옷을 갈아 입히는 것을 보니 어려도 애 엄마는 엄마인 모양이다.

우여곡절 끝에 버스는 테토안(Tetouan)에 도착했고 약 20분간 정차한 후 다시 달려 총 3시간 정도 걸린 후에 탕헤르에 도착했다. 토한 아이의 엄마가 제법 스페인어를 잘해서 이것 저것 물어보고 이야기를 하며 왔던 터라 잘 돌아가라고 인사를 한 후 아실라(Asilah)행 버스를 찾았다. 론니에 30분 마다 한 대씩 있다고 나와 있었는데 이상하게 사설 버스 마다 표를 파는 곳이 없었고 버스가 없다고만 했다. 혹은 밖에 나가보라고 하기도 했다. 10명이 넘게 사람들을 붙들고 물어봤지만 대답이 다들 달라서 일단 대답들을 종합해 생각해 보니, ‘버스가 이미 떠났고 한 쪽 끝에 있는 곳에서 기다리면 버스가 올 것이다’란 것으로 결론 내릴 수 있었다.

 

 

워낙 가까운 곳이라 1시 정도 밖에 안된 시간에 버스가 끊길 리는 없다고 생각해서 비어있는 곳 근처에 앉아 참치 샌드위치(14디람)을 하나씩 먹었다.

내 생각에는 상당히 자주 있어야 할 버스가 30분 정도 시간이 지나도 보이지 않길래 다시 여러 사람을 붙잡고 물어봤더니 결국 한 사람이 다른 두 모로코인과 함께 따라오라며 길을 앞장섰다. 난 버스 탄다고 했더니, 버스가 없어서 미니 버스를 타야 한다고 했다.

오전에 끝난 건지 아예 버스가 없어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다른 두 모로코인 중에 한 사람이 영어를 하며 자신도 아실라에 간다고 하길래 일단은 같이 따라 갔다. 터미널에서 큰 길을 건너 뒷 골목에 도달하니 미니 밴 한 대가 서 있었고 그 곳에는 미리 몇몇의 사람들이 버스에 타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격을 확인하니 15디람이라길래 우리도 짐을 싣고 미니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약 15분여를 다른 사람들을 더 태우더니 출발했다. 미니 버스는 가면서도 길 거리에 연신 소리를 치며 사람들을 더 태웠고 결국 가득 가득 차서야 더 이상 사람을 태우지 않았다.

 

 

 

탕헤르에서 아실라까지는 약 30km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아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우린 아실라 기차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아실라가 해변 휴양 도시인 만큼 숙소가 비쌀 것이라 예상하고 구글 지도에 나와 있는 캠핑장에서 캠핑을 하며 2박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래서 일단 기차역에 가서 카사블랑카행 기차표를 예매하고(1인 109디람), 캠핑이라고 써 있는 곳을 찾아 다녔는데 알고 보니 캠핑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모두 군인 시설이었다. 텐트치고 캠핑하는 것이 모두 불가능하다길래 어쩔 수 없이 다시 걸어서 메디나 앞쪽까지 왔다.

 

 

 

 

운 좋게 저렴한 숙소(hotel asilah)를 잡고(더블룸 150디람에 흥정)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시장 쪽을 다니다가 이 곳은 예전에 스페인 영토라 스페인 음식이 많다는 글을 읽고는 해산물 빠에야(30디람)와 새우 따진(40디람)을 시켜 먹었다.

 

 

한국에서 빠에야를 대 실패한적이 있어 일행은 조금 염려스러워 했는데 결과는 대 만족이었다. 맥주가 없어 2프로의 (사실 98프로) 허전함이 있었지만 정말 맛은 좋았다.

 

 

그렇게 배를 두둑히 채우고는 메디나 구경에 나섰다. 아실라는 메디나 내 벽화로 유명한 곳인데, 최근에 그린 벽화인지 매우 선명한 그림들이 메디나 벽 여기 저기에 남겨져 있었고 모두 2014년 작품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정말 수준 높은 그림과 예술성 그리고 뛰어난 색감에 감탄하면서 구경을 다녔는데 생각보다 사람도 많지 않고 날씨도 시원해서 산책하기에는 최고였다.

 

 

 

해가 지는 풍경을 구경하다가 아무래도 맥주가 당겨서 해변 비싼 식당이라도 가서 맥주만 먹을까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적당한 곳이 없었다.

결국 카사블랑카나 튀니스가서 먹자고 포기하고 그냥 돌아가려는 순간 정말 마법처럼 맥주를 파는 곳이 나타났다. 그것도 병과 캔으로..

 

 

너무 감동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일단 안 먹어 본 맥주 3가지 정도만 골라 샀다. 하지만 또 한번 놀랐던 것은 가격이었다. 가격이 42디람 밖에 하지 않은 것이다. 150디람이었어도 먹을 작정이었기 때문에 정말 교황이나 주지 스님의 은총을 받은 것처럼 매우 매우 기뻤다.

모로코에서는 종교적 이유인지 맥주 구하기가 정말 어려운데 그나마 파는 곳들은 항상 가격이 비쌌다. 하지만 관광지의 식당이나 호텔이 아닌 로컬에서의 맥주를 찾은 것이라 목 말라 본 사람만이 느낄수 있는 절실한 감동을 느낀 것이다. 

 

 

 

 

속이 비치지 않은 검은 비닐 봉지에 담아준 맥주를 곱게 챙겨와서 숙소 옥상에서 저녁 노을을 바라 보며 마셨는데 맛 없는 맥주였는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맛있게 먹었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맥주를 오래 굶다 보면 아마 이해가 될지도.. 네덜란드 맥주 하나, 스페인 맥주 하나, 페즈에서 생산된 맥주 하나 이렇게 세 개였는데 그 중 가장 나았던 것은 페즈에서 만든 맥주였다. 하지만 불만은 전혀 없었고 정말 행복하고 즐겁게 맥주를 마셨다.

 

 

 

오늘 하루 있었던 모든 안 좋은 일들이 머리 속에서 모조리 사라지며 즐거운 기억만이 남게 되었다. 나 홀로 월드컵 응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랄까..

 

 

 

내일 하루도 정말 기대되며 산책, 운동, 맥주로 가득 찬 하루가 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맥주 가게 위치가 궁금하신 분은 댓글을^^


 

 

맥주 가게 위치 올립니다.(위에 올린 식당 옆 가게-2021년 글 수정하며 지도 첨부함. 사거리에서 보면 찻집 있고 찻집 바로 옆에 조그만 구멍가게처럼 맥주 가게 있어요. 제법 일찍 열고 일찍 닫아요 ) 그럼 맥주 맛있게 드세요~